“임금피크제도 앞으로 통상임금처럼 근로자들의 집단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10일 율촌이 ‘임금피크제 분쟁, 쟁점 이해와 기업의 대응방안’이란 주제로 진행한 웨비나에서 “대법원이 지난달 ‘합리적 이유없는 임금피크제 적용은 연령 차별’이란 판결을 낸 뒤 노동계에선 대책자료를 내놓고 문제 소지가 있으면 소송을 제기하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은 지난달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삭감된 급여를 돌려달라는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정년이 늘어나지도 않았음에도 업무 변경이나 목표 수준 하향을 통해 업무량이 감소했다는 점을 회사가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 이후 A씨와 같은 '정년유지형'뿐만 아니라 '정년연장형'(정년을 늘리는 대신 임금은 삭감) 임금피크제까지 무효로 인정되는지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날 웨비나 시청자만 1500여명에 달했을 정도다.
조 변호사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 손을 들어준 뒤 비슷한 소송이 대거 제기됐다”며 “임금피크제 역시 향후 분수령이 될만한 판결이 추가로 나오면 근로자들의 소송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법조계에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로 인정되는 판례가 나오면 '무더기 소송'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대법원이 지난달 판결 과정에서 내놓은 임금피크제 도입의 합리성 충족조건을 살펴보면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긴 쉽지 않을 것으로 율촌은 전망하고 있다. 대법원은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 저감 등의 조치 여부 △임금 삭감으로 확보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에 쓰였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불합리적이어야 임금피크제 적용을 연령 차별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진수 율촌 변호사는 “정년연장형이라면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됐을 때 고령자 고용안정화라는 목적 달성으로 근로자들의 고용기간이 연장됐기 때문에 불이익도 작은 편”이라며 “임금 삭감 폭만 아주 크지 않으면 합리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동안 진행된 하급심에서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서울고등법원이 지난해 9월 ‘정년을 2년 연장한 대신 이르면 44세부터 연차별로 최대 50%까지 임금을 삭감한다’는 취업규칙을 적용한 기업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한 것 정도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재판부는 당시 “그 내용이 현저히 부당해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웨비나에선 대법원이 최근 제시한 합리성 기준 외에도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노사 협의 분위기와 노동조합의 인식이 어땠는지도 관련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인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김도형 율촌 변호사는 “막상 소송전이 시작되면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려울 때도 많다”며 “당시 회의록이나 대자보 등을 확보해 노조 측이 가졌던 인식을 재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