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바람이 K팝 업계에도 불고 있다. 여러 아이돌이 컴백 때마다 100만장 이상의 앨범을 팔아치우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등 엔터가 핵심 산업군으로 부상한 데 따라 사회적 책임 또한 강조되는 분위기다.
K팝은 현재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K팝 대표주자들의 활약 속에서 거침없이 글로벌 성장을 일궈냈다.
음원을 듣는 시대에 누가 실물 앨범을 사겠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음반은 공연과 함께 엔터 업계를 지탱하는 불변의 최대 수익원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 음반 수출액은 2억 달러 고지를 밟았다. 데뷔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신인들까지 앨범을 100만장 이상씩 팔아치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앨범 판매량은 대중성의 지표가 아닌 팬덤 영향력을 나타내주는 수치라고 지적한다. 많은 팬이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감상하기 위해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포토카드·포토북 등 앨범에 든 추가 구성품을 다양하게 소장하기 위해 이를 대량으로 사들인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팬들은 배보다 배꼽이 큰 소비를 당연한 듯 해왔고, 포토카드 교환 거래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하지만 K팝 앨범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이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 등이 부각되며 팬들 사이에서도 세계적 위상에 걸맞은 업계의 사회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케이팝 팬들이 모여 기후 행동을 하는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은 '죽은 지구에는 케이팝도 없다'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벌이며 친환경 앨범 발매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한 달간 K팝 팬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실물 음반을 기부받았는데, 그 결과 무려 8027장이 모였다. 생산자가 사용 후 발생되는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책임지라는 취지로 엔터사에 이를 배송하기도 했다.
포토카드가 빠진 앨범은 이내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단순 폐기물로만 취급하기엔 환경오염 유발 물질이 많다. CD는 자연 분해되는 데에만 100만년이 걸리는 폴리카보네이트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사실상 자연분해가 어려워 소각해야 하는데 그 경우 유독가스가 발생한다. 포장재인 폴리염화비닐(PVC), 코팅 종이 등도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구성품으로 앨범 구매를 유도해온 업계의 오랜 방식이 오늘날에 이르러 지적받는 이유다.
이에 일부 엔터사들은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만들어 내놓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송민호, 트레저, 아이콘, SM엔터테인먼트 NCT 드림 등이 '환경 보호 앨범'을 선보였다.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용지와 콩기름 잉크,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배출이 없는 환경친화적 코팅,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를 활용하는 등의 방식이다.
에이핑크, 빅톤의 소속사 IST엔터테인먼트는 포토카드만 실물로 받아보고 앨범 트랙이나 뮤직비디오, 제작 비하인드 사진 및 영상은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어 앱을 통해 보는 '플랫폼 앨범'으로 플라스틱 발생을 축소했다.
음반 제작 소재 및 방식을 바꿔 환경 오염을 줄이겠다는 긍정적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시각도 있다. 팬들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엔터사에서 먼저 행동에 나섰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음악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엔터사에 한정되지 않고, 관련 업계 전반에 걸친 보다 유기적이고 다각적인 고민과 연구가 수반되어야 할 시점이다.
2019년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투어 중단 선언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콘서트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탄소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에 책임을 느꼈다는 콜드플레이는 무려 6100억원에 달하는 투어 수익을 포기하고 이 같은 선언을 했다.
그리고 투어를 멈춘 지 3년 만에 돌아온 이들은 탄소 배출을 줄인 '친환경 콘서트'를 대안으로 들고 왔다. 일회용 야광봉 대신 식물 기반으로 자이로밴드(LED손목밴드)를 만들었고, 공연에서 사용하는 색종이도 분해가 가능한 소재를 사용했다. 또 키네틱 플로어라는 바닥재를 사용해 관중들이 뛸 때마다 생기는 운동에너지를 전력으로 생산해내는 방식 등을 시도하고 있다.
멜론, 지니 등 음원 플랫폼에서 스트리밍하는 것 또한 음원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미국의 음악 매거진 롤링스톤에 따르면 음원을 제공하는 플랫폼에서는 스트리밍 시 전력, 대규모 냉각 시스템 등을 필요로 하는 서버가 활성화되고, 청취자의 장치에서는 다운로드한 노래를 재생할 때보다 배터리 수명을 두 배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트리밍 대신 모든 노래를 다운로드하면 첫 번째 청취 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80% 감소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현재 엔터 업계는 메타버스 사업에 주력하는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활용이 커지는 상황이기에 친환경 앨범 제작에서 나아가 온·오프라인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연 친화적 전략들이 적극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관련 업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지난해부터 '탄소 배출 제로' 프로젝트를 시행해 1년 만에 기존 방식 대비 1만 4000메트릭 톤 이상의 탄소 배출을 저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작 현장에 전기차를 도입하고, 디젤 발전기를 휴대용 전기 배터리 또는 친환경 수소 발전 장치로 교체하는 등의 방식이었다. 또 탄소배출권 프로젝트에도 투자하고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K팝의 친환경 전략이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은 사실이지만, 음반 판매 및 음원 스트리밍으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 너무 깊숙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힐 수는 있다고 본다"며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엔터사는 물론이고 공연 기획사, 음원 및 영상 플랫폼 사업자 간 실효성 있는 아이디어가 오가는 적극적인 분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