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10일 14:4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96년 미국 X프라이즈 재단이 1000만달러 상금을 내걸었다. 승객 3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체를 만들어 고도 100㎞까지 갔다 오면 됐다. 단 2주 안에 2번 왕복해야 했다. 지상 100㎞은 우주가 시작되는 경계다. 즉, 재사용 가능한 최초의 민간 우주선을 찾는 대회였다.
2004년 우승자가 나왔다. 전설적인 항공기 설계자 버트 루탄이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의 지원을 받아 만든 스페이스십원(SpaceShipOne)이었다. 온 세상이 주목했다. ‘괴짜 사업가’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그해 버진갤럭틱을 세우고 루탄과 함께 우주 관광용 우주선인 스페이스십투 개발에 나섰다. 스페이스X(2002년 설립), 블루 오리진(2000년) 등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민간 우주 산업’이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우주에 도착한 투자자들≫은 ‘우주 비즈니스’ 책을 표방한다. 저자 로버트 제이콥스는 일찍이 우주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해 온 인물. 다양한 우주 스타트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앞으로의 전망과 우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도 담았다.
우주를 놓고 민간 시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가격’이 필요하다. 그 토대를 놓은 게 스페이스X라고 책 속의 우주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우주 발사체 시장에 기여한 가장 큰 한 가지는 발사에 가격을 매긴 것입니다. 이전에는 우주에 무언가를 발사하고 싶어도 사업 계획서조차 작성할 수 없었습니다. 자금을 마련하기 전에는 견적을 받을 수 없었고, 견적을 받기 전에는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발사에 가격이 매겨지자 파생 산업과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표적인 게 소형 위성 사업이다. 2010년 창업한 플래닛랩스는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한 작은 크기의 위성을 지금까지 200개가량 쏘아 올렸다. 작고 가벼운 만큼 만들고 발사하는 데 돈이 적게 들었다. 그렇다고 성능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PC가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과 비슷했다. 이렇게 작은 위성을 무수히 쏘아 올리자 지구 어디든 거의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됐다. 플래닛랩스가 770여 고객을 확보하고, 지난해 1억3120만달러(약 1648억원)의 매출을 거둔 원동력이 됐다.
‘승차 공유’ 스타트업도 생겨났다. 로켓랩스가 그런 예다. 플래닛랩스 위성 9개를 로켓에 탑재해 발사하면서 빈자리에 캐논전자 위성 1개를 같이 실어 보내는 식이다. 택시가 목적지가 비슷한 두 손님을 함께 태우는 것과 같다. 스페이스X 역시 승차 공유를 시작하며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주 자원 채굴도 유망 분야로 꼽힌다. 일본 스타트업인 아이스페이스를 비롯해 문 익스프레스, 마스튼 스페이스 시스템, 애스트로보틱 등이 달에서 자원을 채굴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 중이다. 이 로봇들은 미래에 소행성에도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곳에 희토류가 많기 때문이다. 나사(NASA)는 지구 근처에 10만 개의 소행성이 있으며 백금, 니켈, 코발트, 철, 희토류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민간 우주 개발에는 ‘규제 완화’라는 약(藥)도 필요했다. 1962년 AT&T는 최초의 상업 위성 텔스타 1호를 쏘아 올렸다. 하지만 그해 제정된 ‘통신위성법’으로 우주 민영화는 금지됐다. 1984년에는 ‘상업우주발사법’이 만들어졌지만, NASA가 불필요한 요식 행위를 요구하면서 민간 기업의 참여는 저지됐다. 숨통은 2004년 트였다. ‘상업우주발사수정법’ 덕분이었다. 민간의 우주 사용이 실질적으로 합법화됐다. 연방항공청이 민간의 유인 우주 비행에 안전 제한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규제는 아직 민간 우주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연방항공청, 해양대기청, 연방통신위원회, 상무부, 국무부 등에서 각종 면허와 허가를 받아야 하며, 작은 기업들의 도전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왜 또 미국인가. 이 책은 미국이 민간 우주 산업에서 앞서나가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 기업가 정신, 잘 발달한 벤처 생태계, 규제 완화 등이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저스 등 우주 기업 창업가들이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SF) 소설·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기 때문이란 설명도 흥미롭다.
책은 단점도 있다. 깊이가 얕고 짜임새가 떨어진다. 많은 역사와 기업, 현황을 빠르게 흩고 지나간다. 어느 정도는 의도적이다. 저자는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를 돕는 스냅 사진이면서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아이디어들이 포함된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민간 우주 산업에 대한 개괄서 혹은 입문서로 보면 좋은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