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원료 수급까지 차질 빚나" 초긴장

입력 2022-06-09 17:47
수정 2022-06-10 01:3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가 사흘째 파업을 이어가면서 전국 곳곳에서 물류 차질이 빚어졌다. 업계에서는 피해를 보는 업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연대는 반도체 원료 생산시설 봉쇄를 새로운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타깃으로 잡은 제품은 고순도황산(PSA)이다. 국내 최대 아연과 구리 제련업체인 고려아연과 LS니꼬동제련은 제품 공정 과정의 부산물로 황산을 생산하고 있다. 화물연대 울산본부 조합원들은 이날 오후 1시30분께 고려아연과 LS니꼬동제련 울산공장 앞에서 물류 봉쇄 시도에 나섰지만 경찰 병력이 투입되면서 30여 분 만에 철수했다. 두 회사는 화물연대의 추가 봉쇄에 대비해 울산공장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거치면서 반도체업체들도 원자재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며 “당장 생산라인이 멈춰서는 극단적인 상황이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업 기간이 길어지면 생산 차질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거래 가격이 결정되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제품은 원자재값 등을 반영해 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기업 임원은 “원료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가격 인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며 “파운드리 제품 가격 상승은 다른 가전, 스마트폰, 서버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류 마비에 따른 부품 공급 차질로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도 심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생산라인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날 오전 기준 부품, 철강, 탁송, 포워딩(선적) 분야에 원래 투입되는 전체 6000여 대 차량 중 1500대 정도만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배송(탁송)도 전면 중단됐다. 기아는 번호판도 발급받지 않은 완성차를 직원이 직접 운전해 옮기기도 했다. 부품업체로도 불똥이 튀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이날 발표한 호소문에서 “부품업체의 공급을 막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절박한 생존의 상황에 내몰린 부품업계 종사자를 위해서도 운송 중단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철강 운송 차질도 확산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사흘 연속 하루 물동량 약 4만9000t 가운데 절반가량을 출하하지 못하고 있고,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서는 하루 출하량 9000t의 물량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국 물류망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한쪽에서는 생산품을 운송하지 못해 재고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산품을 받지 못해 재고 부족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물류 거점들의 물동량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기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따르면 올해 수요일 하루 평균 반출입량은 4436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규모였지만, 지난 8일 반출입량은 392TEU에 그쳤다. 우리나라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도 하루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크게 줄었다. 전날 오후 5시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1만1628TEU로, 5월 같은 시간대 반출입량의 30% 수준이다.

김일규/박신영/곽용희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