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판사로 처음 임용됐을 때는 판결 초고를 직접 손으로 쓰고, 판례 검색을 위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하나하나 찾아 읽어봐야 했다. 그 후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상용화되며 판결문 작성과 판례 검색이 쉬워지고 편리해졌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해 법조인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기도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법조인 수는 10배 이상 많아졌고, 업무 영역은 그 이상으로 넓어지면서 그러한 우려는 사라졌다.
지난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만남에서 화두 중 하나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이었다. 자율주행은 AI가 신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가학습 능력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지는지가 관건인데, 획기적인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무인 자동차 시대’도 결코 먼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법조계에서도 AI 리걸테크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대량의 법률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하는 사무자동화 프로그램에서부터 궁극적으로 딥러닝을 통한 AI의 판단과 분석까지 기대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사·변호사의 성향을 분석하고, 승소율을 예측하는 AI 리걸 서비스가 실제 운용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리걸테크는 아직 사무자동화 수준에 가깝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리걸테크가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양과 질을 고루 갖춘 법률 데이터 확보가 필수적인데, 법률 정보가 아직은 대법원이 선택적으로 공개한 일부 판결에 불과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리걸테크는 피할 수 없는, 아니 더욱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대세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로펌업계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별화한 서비스가 필수적이며, 일반인들은 리걸테크를 통해 보다 작은 부담으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몸담은 로펌에서도 독자적인 법률 AI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관련 팀을 구성하고 차근차근 대비하고 있다.
이쯤에서 30년 후의 법조계를 한번 생각해 본다. 리걸테크가 활성화되면 AI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해 ‘무인 자동차’처럼 법조인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어질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No’인 것 같다.
법률적인 자문과 판단, 설득에 기술과 논리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법조인 역시 논리적인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공감하며 신뢰를 주고, 감정이나 표정 등의 비논리 요소로도 접근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리걸테크가 많은 업무를 단순화, 정교화할 순 있겠지만 감정·공감 등 인간 본성까지 잠식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리걸테크가 대세이고 로펌의 미래에 필수 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본질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