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르르했던 국내 복귀 지원 약속 중 제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자꾸 되뇌어 봅니다. 그때 돌아오지만 않았다면….”
매출 수백억원대 중소기업을 이끌던 사장들을 최저임금을 받는 날품팔이로 전락시킨 ‘원흉’은 해외 진출 기업의 유턴을 적극 추진한 정부의 무대책이었다. 기업의 국내 복귀에 발맞춰 미리 준비했던 지원이 차곡차곡 집행됐어야 하지만 실무적인 지원책이 ‘백지상태’인 게 실상이었다. 여전한 각종 기업 규제에 행정기관의 늑장 대처,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이 큰마음을 먹고 고국에 돌아온 기업들의 숨통을 옥좼다. ‘독’이 된 엇박자 행정
2013년 ‘유턴기업지원법’ 제정 이후 지난 10년간 리쇼어링(국내 복귀)에 나선 기업은 올 5월 현재 총 113곳에 불과하다. 복귀 기업의 절대다수인 88곳이 중소기업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복귀 기업 규모만이 아니다. 어렵사리 복귀한 기업들에 준비 안 된 정부의 유턴 추진 정책이 ‘독’이 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게 더 큰 문제다. 특히 각종 인허가 지연 등 고질적인 늑장 대처와 중복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국내로 뿌리내리려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한 사례가 많았다.
최저임금 근로자로 연명하고 있는 장영문 전 파워이앤지 사장도 복귀 초기부터 정부의 부실·늑장 대처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2012년 12월 전북 군산에 공장을 완공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주문 물량을 생산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공장 부지 조성과 인허가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2013년 9월에야 공장을 완공했다. 원청 업체의 주문 물량은 모두 경쟁사로 넘어간 뒤였다.
무의미한 서류 작업은 기업인을 지치게 했다. KOTRA 사장 명의 고용추천서를 발급받은 중국인 전문인력을 데려오려고 하자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중국 외교부와 한국 영사관 서류 인증을 추가로 요구했다. 장 전 사장은 “인프라 하나 없는 땅에 산업시설을 조성할 시점에 중소기업진흥공단, 시중은행, 보증보험 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는 데 꼬박 6개월을 허비했다”고 털어놨다.
해외 사업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도 유턴 기업의 초기 정착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장 전 사장도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보증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중국 사업 내역을 인정받지 못해 거절당했다. 결국 공장 부지를 담보로 설정해 마련한 예치금 수억원을 납부한 뒤에야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각종 규제로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 점도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 복귀를 주저하는 이유다. 최근 5년 동안 41.6%나 오른 최저임금을 비롯해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유턴기업지원법 시행 후에도 해외로 나가는 중소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기업보다 훨씬 많다”고 꼬집었다. 무용지물 된 지원책유턴기업지원법이 시행된 직후인 2014년 20개였던 유턴기업 수는 이듬해부터 매년 10개 안팎으로 크게 줄었다. 정부는 2018년 11월 고용보조금 등 인센티브 강화를 핵심으로 한 유턴 기업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2019년 12월 유턴기업지원법 개정과 2020년 2월 코로나 수출 대책 마련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했다. 같은 해 중반에는 해외사업장을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생산량 감축에 비례해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속해서 제도를 손질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유턴 기업 지원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민덕현 전 거성콤프레샤 사장도 서류상으로 제출한 투자 및 고용 규모를 맞추지 못한 탓에 약속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공장 두 동 중 한 동을 먼저 짓고 사업이 안정화되면 나머지를 지으려 했는데 지방자치단체는 계획서상 공장 두 동을 모두 지어야 보조금을 줄 수 있다고 했다”며 “빈 공장을 한 동 더 짓고 임대라도 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금지됐다”고 돌아봤다.
민 전 사장은 약속한 고용보조금을 정부에 신청했으나 지급 신청 기한인 유턴 기업 업무협약 이후 3개월을 넘겼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오히려 40명을 고용하기로 했지만, 기업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을 23명으로 줄인 것을 빌미 삼아 정부와 지자체가 고용 규모를 유지하지 못했다며 보조금 15억6000만원을 반납하라는 압박까지 했다. 그는 “3개월이면 터파기 공사도 안 됐을 땐데 무슨 수로 약속된 사람 40명을 고용하느냐”며 혀를 찼다.
적잖은 유턴 기업인들이 리쇼어링 후 몇 년 안 돼 생때같은 기업을 포기했다. 대다수 복귀 기업은 정부의 약속과 거리가 먼 푸대접에 고전하고 있다. 이들에겐 고국에서 사업하는 것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에 불과한 모습이다.
민경진/김진원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