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08일 17:1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흔히 ESG투자를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투자'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고 동어반복적이어서 듣는 이에게 ESG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다. 보다 실천적으로 ESG투자를 정의하자면 'ESG경영을 잘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투자는 결국 기업(주식 채권 등)이나 실물자산(부동산 인프라 등)을 취득하는 행위이고, 투자의 ESG성과는 투자대상의 ESG성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ESG투자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남는 숙제 두 가지가 분명해진다. 첫째, ESG경영을 잘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을 어떻게 골라낼 것인가? 둘째, 그러한 기업이나 실물자산의 투자수익과 투자위험이 나에게 만족스러운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ESG평가·ESG지수 품질 높이려면 비재무적 정보 충분히 확보해야ESG경영을 잘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을 식별하는 데는 ESG평가나 ESG인증을 활용할 수 있다. 기업이나 실물자산이 갖는 ESG성능을 점수나 등급의 형태로 측정하는 것을 ESG평가라고 하는데, 이는 기업의 신용을 점수나 등급으로 나타내는 신용평가와 유사하다. 기업에 대해서는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와 MSCI가 오래전부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S&P, 무디스(Moody’s), 피치(Fitch)와 같은 신용평가기관도 이 시장에 이미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대표적인 ESG평가 기관이다. 실물자산 특히 부동산에 대해서는 ESG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녹색건축 인증이 이루어져 왔다. LEED와 BREEAM이 대표적인 인증 서비스인데, 녹색건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환경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가의 대상을 사회 부문으로 확장한 WELL, 지배구조 부문까지 포괄하여 ESG 전 영역을 평가하는 GRESB 등의 인증 서비스가 출현하여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이나 실물자산에서 시작된 이러한 평가나 인증 서비스는 채권(ICMA와 CBI)과 대출(LMA)의 영역까지 확대되어 ESG투자를 수월하게 만들고 있다.
ESG경영을 잘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의 수익위험 특성을 파악하는 데는 ESG지수를 활용할 수 있다. ESG지수란 ESG성능이 우수한 투자대상의 수익률지수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ESG투자의 재무적 성과를 보여주는 벤치마크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수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ESG성능이 우수한 기업이나 실물자산을 식별해야 한다. 따라서 ESG지수는 ESG평가의 발전이 선행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다. ESG지수가 만들어지면 투자자는 그 수준과 변동성을 통해 ESG투자의 수익위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하여 ESG투자의 시행 여부와 비중을 결정할 수 있다. 한편 ESG지수가 ESG투자의 성과를 보여주는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에서 수익률지수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종목에 대한 정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그 수익률을 추종하는 패시브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ESG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ESG지수는 ESG ETF와 같은 금융상품의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주식이나 채권에 대한 ESG지수는 MSCI, S&P다우존스(S&P Dow Jones Indices), FTSE러셀(FTSE Russell) 등 전통적인 지수작성기관이 모두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에 대해서는 리츠와 일부 사모펀드에 국한해 ESG지수가 발표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자본시장에는 ESG투자를 돕는 서비스가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ESG평가에 대해서는 같은 기업이나 실물자산에 대해 평가기관마다 결과가 상이하여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ESG지수에 대해서는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우량한 기업의 수익률지수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 ESG평가와 ESG지수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지적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는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ESG평가와 ESG지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의 경영에 관한 정보, 특히 환경, 사회, 지배구조와 관련된 비재무적 활동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회계제도와 같은 방법으로 체계적인 공시가 이루어지는 재무적 정보와 달리 비재무적 정보에 대해서는 공시의 의무나 표준이 확립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자나 지수의 작성자가 상당한 정보를 직접 수집해야 한다. 이것이 ESG평가와 ESG지수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 대해 대부분 전문가가 공감하고 있다.
ESG보고 표준 정립이 ESG투자 활성화 이끌 것기업이나 실물자산의 ESG경영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ESG보고 또는 ESG공시라고 한다. 과거에는 ESG경영을 표방하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이 스스로 정한 내용과 방법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잘한 일만 기록한 홍보물과 같은 한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보고서는 개별 기업이나 실물자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여러 기업이나 실물자산을 비교해야 하는 투자자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회계 분야의 US-GAAP이나 IFRS와 같은 보고 또는 공시의 표준을 비재무적 정보에 대해서도 마련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는데, 놀랍게도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표준이 탄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ESG투자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고무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종류가 너무 많고 내용이 각양각색이어서 ESG투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어떤 표준을 따라야 할지,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표준을 신뢰해야 할지 선별하는 것부터 과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수많은 ESG보고의 표준 중에서 국제적으로 신뢰를 얻는 것이 GRI, CDP, CDSB, IIRC, SASB 등 소수로 수렴되고, 이들 간에도 통일 및 통합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G20이 주도하여 결성한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의 활동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7년 TCFD가 '기후변화 관련 재무 및 금융정보 공시 권고안'을 제시했고, 2020년 앞에서 언급한 5대 기관이 이에 대한 지지와 상호 협력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TCFD의 권고안을 반영한 공시 프로토타입 개발로 이어졌고, 2021년에는 IIRC와 SASB가 VRF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기도 했다. ESG보고의 표준에 대한 표준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회계공시의 표준을 제공하는 IFRS재단도 산하에 ISSB(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라는 조직을 구성하여 ESG공시의 표준을 마련하고 있다. IFRS재단은 전세계 금융감독기구나 증권거래소와 협력하며 회계공시의 표준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활동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ISSB는 최근 ESG공시의 초안을 제시하고 전 세계 이해당사자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SASB를 중요하게 참고하고 있다. 이로써 ESG보고의 표준 간뿐 아니라 회계공시와 ESG보고의 표준 간에도 통합이 서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ESG보고의 표준이 어떤 모습으로 정리될지 단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는 단계에 이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나 실물자산의 ESG경영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것이며, ESG평가와 ESG지수의 발전을 초래할 것이다. 그 결과 고도로 발전해 있는 재무적 투자의 계량적 기법들이 ESG투자에 적용되는 날도 앞당겨질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