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하마, 짱돌, 시엄마, (모)범생. 이름보다 학창 시절 별명이 더 친숙한 서울 K고 13기 호랑이띠(49) 동창생들. 자식, 뱃살, 투자수익률, 골프를 넘나들던 술자리 담화는 자연스럽게 정치·사회 이슈로 돌아왔다.
▷하마=지금 40대가 우리 사회 가장 진보적인 세대라는 분석을 봤어. 100% 동의하진 않지만 점점 몸 사리는 586과 분명히 다른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건 맞는 거 같아.
▷짱돌=관리 직급인 586과 달리 대부분 40대는 아직 관리당하고, 통제받는 입장이라 저항 심리로 진보 성향이 유지되는 게 아닐까.(웃음)
▷범생=40대를 586의 종속변수로 보는 사람도 있어. 586과 이념적으로 잠시 접속했을지 몰라도 무조건 수용한 건 아니야. 현재의 진보 성향도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 X세대 특유의 실용주의적 선택일 가능성이 커.
▷시엄마=대학가 당구의 계보가 끊긴 게 X세대라는 거 들어봤지. 신입생 때 어두컴컴한 학회방에 들어갔다가 기겁하고 도망쳐 나온 기억이 생생해. 민족, 민주, 반미 투쟁 일색이던 학생운동이 등록금 인하 투쟁 등 생활밀착형으로 바뀌는 걸 직접 목격한 세대가 바로 우리야.
▷하마=개인주의와 넘치는 감성이 586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특성이지. 자기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거야. 무미건조한 586들은 은퇴하면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궁금해.
▷짱돌=우리를 IMF 세대로 부르는데 난 그 단어가 별로 달갑지 않더라. 외환위기를 모든 일의 핑계로 갖다붙이는 거 같아서 말이야. 당시 외환위기가 특정 세대에만 영향을 끼친 건 아니잖아. 오히려 자산시장이 리셋되면서 이후 부동산 등 자산 축적 측면에서 특혜 아닌 특혜를 본 또래 친구도 많았어.
▷시엄마=다들 지방선거 투표했나. 난 후보들 면면을 들여다보는데 왜 그리 한숨만 나오는지…. 그래도 난 아직 보수 정당 후보는 누가 나와도 뽑지 말자는 신념은 지키고 있어. 정말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아예 투표소에 나가지 않는 것도 내 나름의 저항 표시야. 최극강 개인주의에, 결집력 제로인 현 40대의 코호트(집단적 특성)를 내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건가.(웃음)
▷범생=우리 40대는 이렇게 열려 있는데 왜 MZ세대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들 눈에는 우리와 586이 별반 달라 보이지 않겠지. 우리 보고 같잖게 쿨한 척이나 한다는 뒷담화도 할 거 같고. 선배로서 인생 조언도 해주고 싶은데 뭐 그 순간 꼰대 짓 한다고 하니 스스로 움츠러지네.
▷짱돌=가장 어려운 게 세대 소통 문제야. ‘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 닭살 돋지만 이게 우리 X세대의 모토였잖아. 우리도 그렇게 성장했으니 MZ세대들 그냥 있는 그대로 지켜봐줄 수밖에.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