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 사노피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앞선 근무방식을 도입했다. 2019년에는 시차 출퇴근제·주 1회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팬데믹 때는 재택근무 그리고 올해부터는 아예 매월 절반(15일)만 회사로 출근하는 혁신적인 근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사노피는 나머지 근무일의 절반은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위위(WEWE: when ever where ever) 프로그램’이라고 칭했다. 하루 중 오전 10시~오후 4시는 핵심 근무시간이다. 이 시간 외에는 직원 개인이 근무방식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했다.
김은주 사노피 인사담당 부사장(사진)은 “위위 제도는 오랫동안 사용자가 직원을 관리해 온 근무방식을 포기한 인사 혁명”이라며 “직원들이 언제, 어디에서 일을 하는지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직원 개개인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는 ‘신뢰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노피는 신뢰의 문화 정착을 위해 채용과 평가 방식도 바꿨다. 채용 땐 ‘지원자의 판단력’ ‘내재적 동기’ ‘선한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뽑는다. 직원 평가도 과거 ‘성과 중심주의’에서 ‘성장과 조직 영향력’으로 상향했다.
김 부사장은 1998년 한국화이자제약에서 인사 매니저로 시작해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25년 가까이 경력을 쌓은 ‘인사 전문가’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기업문화. 김 부사장은 “건전한 기업문화와 직원 사기는 처음엔 구축하기 힘들지만 정착만 된다면 경쟁사가 모방하기 힘들 정도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기업문화’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코로나 대퇴사 시대’에 기업들은 인재 채용과 직원들의 업무 몰입·정착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 서울 반포동에 서울사무소를 두고 있는 사노피는 지난해 기존 4개 층을 2개 층으로 줄이는 ‘사무실 다이어트’를 했다. 그 두 개 층 가운데 상당수 공간도 휴식·회의실로 바꿨다. 김 부사장은 “이제는 회사와 직원의 관계가 재정립돼야 한다”며 “과거 ‘끈끈했던 관계’에서 ‘헐거운 관계(weak tie)’가 돼야 한다”고 했다. 필요할 때는 함께 연대하고 소통하지만 일이 끝나면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우수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선호하는 직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노피는 2030세대가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14주 유급 육아 휴직제’ ‘정신·재정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직원들의 고립감 해소를 위해 MZ세대, 영업 여성 임직원, 일하는 부모, 건강이 안 좋은 직원 등을 대상으로 커뮤니티도 지원하고 있다.
사노피는 1월부터 시행한 위위 제도에 대한 직원 설문조사를 최근 실시했다. '위위제도'가 생산성·몰입도가 직원 개인에게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93%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7%는 이 제도가 '팀 운영'에도 적합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노피는 직원들의 위위 제도 피드백을 받아 수정·보완한 뒤 노사 합의를 거쳐 가능하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김 부사장은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결국 연말에 나올 실적”이라며 “결과를 보면 새 근무방식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노피의 근무혁신 실험을 국내외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