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생삼겹에서 냉삼겹으로

입력 2022-06-05 17:38
수정 2022-06-06 00:10
1980년대, 지방 출신 서울 유학생의 거의 유일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은 삼겹살이었다. 정육점은 물론 동네 슈퍼에서도 팔았던 얼린 삼겹살은 인기 만점이었다. 소고기는 언감생심이고, 얇게 사각형으로 썰어서 스티로폼 접시에 담은 삼겹살 몇 팩이면 ‘촌놈들’ 영양보충하기에 충분했다.

냉동삼겹살(냉삼)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1990년대 들어 냉장유통이 확산하면서였다. 한돈이 냉장 상태로 공급되면서 ‘생삼겹’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기존 삼겹살에는 ‘냉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한돈 대신 수입육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근년 들어 복고풍의 유행과 함께 젊은 층에 인기를 얻었던 냉삼이 가정집 식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물가 급상승과 함께 동네 정육점에서 파는 삼겹살이 ㎏당 3만원을 훌쩍 넘어서자 수입 냉삼으로 바꾸는 집이 늘고 있는 것. 가격이 절반 수준인 수입 냉삼으로 바꾼 한 40대 직장인은 “웬만하면 한돈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만 삼겹살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털어놨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가 공포 수준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5.4%나 뛰었다. 소비자의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6.7%에 달했다. 돼지고기(20.7%) 수입 소고기(27.9%) 감자(32.1%) 배추(24.0%) 밀가루(26.0%) 경유(45.8%) 휘발유(27.0%) 등 만만한 품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들어 상승폭이 계속 커져온 물가 고공행진이 당분간 꺾일 조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요인에 따른 유가·곡물가 인상에 국내에서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양파, 마늘, 감자 등 밭작물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 돼지고기와 밀가루, 대두유 등 14개 수입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0%로 낮추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뛰는 물가를 잡기엔 역부족이다. 국내에서 유통 중인 수입 돼지고기는 대부분 미국·유럽·캐나다산인데 미국·유럽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관세 인하 효과가 없다.

물가·금리·환율이 모두 오르고,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묘안이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 고통을 분담하며 이 난국을 이겨내는 수밖에….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