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불편하다"는데도…10년째 애플의 '이상한 고집' [최수진의 전자수첩]

입력 2022-06-06 15:23
수정 2022-06-06 16:35

지난달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C타입 아이폰 만들었다' 제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습니다. 현재 아이폰은 '라이트닝'이라는 독자 규격을 충전 단자로 쓰고 있습니다. 갤럭시 스마트폰처럼 대부분이 사용하는 USB-C타입 단자와는 다릅니다. 아이폰과 갤럭시의 충전기가 다른 건 이것 때문입니다.

(USB-)C타입 아이폰은 즉 삼성전자 갤럭시폰 충전기로도 충전할 수 있는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굳이 왜 만들었을까요? 글쓴이는 "(애플이) 라이트닝 포트를 없앨 생각을 안해서 해결해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10년째 '고집'일까 '소신'일까...애플 마니아도 이해 못해 이 글은 베스트 게시글로 등극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말 해외 유명 경매 사이트에서는 USB-C타입으로 개조한 아이폰X(텐)이 약 10만달러(1억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이폰 충전 단자를 USB-C타입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겁니다. 멀쩡한 제품을 뜯어 고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USB-C타입의 충전 방식이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아이폰만 단자 규격이 달라 충전에 불편함을 겪기 때문입니다.

라이트닝 단자는 2012년 애플이 독자적으로 선보인 규격입니다. 기존 30핀 단자 대비 크기가 작아졌고, 모양 또한 위·아래가 같아 방향 상관없이 자유롭게 꼽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돼 각광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USB-C타입의 단자가 새로운 표준 규격으로 개발됐습니다. 게다가 라이트닝 단자는 USB-C타입보다 충전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이나 전자기기가 C타입을 채택하면서 아이폰을 충전하려면 별도 케이블과 충전기를 챙겨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릅니다. 미처 케이블을 못 챙겨 부랴부랴 편의점을 찾는 아이폰 이용자도 꽤 있습니다.

아이폰13과 애플워치5를 쓰고 있는 최모씨(32)는 "아이폰13을 충전할 케이블(USB to 라이트닝)과 애플워치5 케이블(C타입)을 따로 챙긴다"며 "충전기 본체까지 두 개를 챙겨야 한다. 좋아서 쓰긴 하는데 상당히 불편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10년째 아이폰에 라이트닝 충전 단자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최근 맥북이나 아이패드 등 일부 모델에 USB-C타입의 단자를 적용한 것과는 대조적 행보입니다. 이를 두고 이용자들은 "다른 제품은 C타입을 도입하면서 아이폰은 왜 여전히 라이트닝이냐"란 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애플의 오랜 고집, 이유는?애플이 오랜 기간 동안 라이트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업계가 추측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른바 '혁신' 때문입니다.

최근 유럽에서는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모든 케이블을 USB-C타입을 통일하는 '무선 장비 지침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요. 소비자들이 새로운 기기를 살 때마다 충전기와 케이블을 매번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도록 모든 전자 케이블 규격을 통일하겠다는 겁니다. 유럽연합(EU)에 따르면 매년 유럽에서는 최대 1만3000t의 전자 폐기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애플이 반발하며 내세운 근거를 통해 업계는 라이트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추측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한 가지 유형의 단자만 요구하는 엄격한 규제는 혁신을 장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할 수 있고 유럽과 전 세계 이용자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로 추측 가능한 이유는 '환경' 때문입니다. 애플은 "단자가 통일되면 애플 이용자가 기존에 이용하던 라이트닝 액세서리를 버려 도리어 전자 폐기물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애플이 라이트닝을 버리지 못하는 속사정으로 'MFi 프로그램'을 꼽고 있습니다.

애플은 일반 업체들이 애플 액세서리를 만드는데 있어 MFi 프로그램을 통해 제품 계획 제출 부터 개발, 인증, 양산 까지 모든 과정을 관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는 애플의 라이센스를 사용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애플은 애플에서 인증하고 MFi 배지가 있는 액세서리만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죠.

해외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더버지는 "애플의 라이트닝 포트는 편의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란 취지의 보도에서 "(충전단자가 변경되면) 애플이나 협력사들이 만든 라이트닝 방식 충전 케이블을 비롯한 관련 기기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돼 수익이 줄어들 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애플이 라이트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시각도 있는데요. 바로 애플이 궁극적으로 무선충전 방식으로 모든 기기의 충전을 통합하고 싶어한다는 이유입니다. 라이트닝 단자에서 USB-C타입으로 전환되는 개발 비용 절감을 위해 아예 충전 단자를 폐기하고 무선 충전이 가능한 제품을 양산할 것이란 '설(說)'이죠.

더버지는 "애플이 라이트닝 단자 없이 무선 충전에만 의존하는 아이폰을 출시할 것이란 소문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애플 소식에 정통한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도 "애플은 라이트닝 포트를 USB-C타입으로 바꾸는 대신 단자를 제거한 완전한 무선 아이폰을 내놓을 수 있다"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결국 C타입 아이폰 나온다는데...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애플의 고집이 꺾이는 걸까요. 최근 애플이 C타입의 충전 방식을 채택할 것이란 소식에 업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애플이 라이트닝 포트를 고수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궈밍치 연구원은 최근 "2023년 애플이 아이폰에 라이트닝 대신 C타입을 탑재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습니다. 2023년이면 신제품 '아이폰15'(가칭)이 등장할 시기입니다.

라이트닝을 고수했던 애플이 움직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EU가 2024년부터 모든 전자기기의 충전 방식을 C타입으로 통일하겠다고 발표한 영향이 가장 크다는 분석입니다. 아이폰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30.1%로(시장조사업체 스탯카운터) 삼성전자(33.01%)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애플이 쉽게 외면하기 힘든 시장 입니다.

때문에 이번 아이폰 C타입 탑재설은 어느정도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2023년부터 USB-C 단자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애플이 라이트닝 단자용 변환 어댑터를 함께 개발 중이지만 이를 판매시 기본 구성품에 포함할지, 별도 판매할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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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