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고 돌아왔다. 자극적인 맛을 쏙 뺀 박찬욱 표 담백한 맛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 박 감독은 완성도를 자신하며 기대를 당부했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 제작보고회가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박찬욱 감독과 주연 배우 탕웨이, 박해일이 참석했다.
앞서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칸 감독상 수상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트로피를 거머쥔 데 이어 두 번째다. 금의환향한 박찬욱 감독은 이날 "(트로피를) 거머쥐지는 않았고, 들었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박 감독은 칸과 인연이 깊다. 앞서 그는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각각 받았다. 또한 2016년에는 '아가씨'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벌써 세 번째 수상. 박 감독은 "그전에는 황금종려상만 트로피를 줬던 것 같은데 트로피가 생겨서 다행이었다. 보기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내겐 외국 영화제 수상보다도 기다리고 있는 한국 개봉에서의 결과, 한국 분들이 어떻게 봐줄지가 제일 궁금하고 긴장된다"고 털어놨다.
박 감독은 "세 번째 수상보다는 한국에서 개봉해서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줄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면서 "특히 이 영화는 내가 만든 다른 영화들보다 조금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점들이 많다. 내 생각엔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좀 특별하다"고 했다.
탕웨이는 "칸에서의 첫 느낌은 너무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햇빛이 찬란했고, 분위기가 열렬하고 뜨거웠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박찬욱 감독님과 박해일을 만난 게 좋았다"고 전했다.
박해일은 '헤어질 결심'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던 때를 떠올리며 "스크린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난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고, 박찬욱 감독, 탕웨이와 칸 영화제를 참여하게 돼 기쁘고 떨렸다. 칸 영화제가 가지고 있는 그분들의 환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들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털어놨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박 감독과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정서경 작가와 의기투합했고, 정훈희의 '안개'가 영화음악으로 삽입돼 특별함을 더한다.
'헤어질 결심'은 박 감독이 읽은 스웨덴의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에서 출발했다. 박 감독은 "고등학생 때 10권으로 이뤄진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은 후에 오랜만에 그 책을 읽게 됐다. 소설 속 형사처럼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서경 작가와 오랜만에 만나 백지상태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를 먼저 꺼냈다. 그러면서 박해일을 예로 들었다. 난 특정 배우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법이 없다. 실제로 박해일을 캐스팅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배역 이름도 박해일의 '해'를 따서 해준이라고 지었다"고 덧붙였다.
또 정훈희의 '안개'를 언급하며 "'안개'를 두 번 사용하는 영화라면 로맨스 영화 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형사와 '안개'라는 노래를 사용해 하나의 로맨스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형태가 갖춰지게 됐다. 이후 대화를 통해 더 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두 배우는 박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출연을 결심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탕웨이는 "감독님께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물을 마셨다. 흥분됐다. 천천히, 완전히 감독님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감독님과 작가님의 눈빛이 굉장히 따뜻했다"며 "그 느낌 덕분에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지만 안심이 됐다. 걱정이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박해일은 "나라는 배우가 감독님의 영화에 잘 맞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즈음에 감독님이 좋은 제안을 해주셨다. 30분 정도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해주는데 형사 캐릭터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또 멜로 영화 장르를 언제쯤 해보냐는 얘기를 주변에서 들었는데, 감독님이 수사극 안에서 멜로와 로맨스의 지점을 보여준다고 하니 너무 궁금했다"고 전했다.
특히 박해일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박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또 다른 결이 새롭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담백한 톤도 느껴졌다. 내가 뛰어 들어갈 수 있는, 도전해 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고 했다.
실제로 '헤어질 결심'은 그간 박 감독이 선보여 온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공개 이후 박찬욱 표 '매운 맛'이 빠진 '순한 맛' 영화라는 평가가 따랐다.
이와 관련해 박 감독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는데 폭력과 정사, 노출 등의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구사한 거였다"면서 "그런 영화들은 관객에게 들이대듯이 바짝 눈앞에 갖다 대는 부류의 영화였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감정을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관객이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가서 들여다보고 싶게 했다. 미묘하고, 섬세하고, 변화를 잘 들여다 봐야 했다. 다른 자극적인 요소들은 낮춰야 그게 가능해질 거라 생각했다. 음악으로 치면 드럼, 기타 등의 반주를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물과 로맨스물이 합쳐졌다는 특징을 지닌 '헤어질 결심'에 대해 박 감독은 특히 '균형감'에 신경 썼다고 했다.
그는 "각본가와 함께 세운 원칙이 절대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기울지 않게 하자는 거였다"며 "칸에서 인터뷰하던 중에 누군가 '이 영화는 50%의 수사 드라마와 50%의 로맨스 영화라고 표현하면 좋겠냐'라고 확인을 해오더라. 그래서 '100%의 수사 드라마와 100%의 로맨스 영화라는 말이 더 낫겠다'고 답했다. 말장난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어느 순간에 어떤 관점에서 보면 수사 영화고 어떤 관점에서는 러브 스토리다. 형사가 용의자를 만나는 관계, 다른 사람들에게 탐문해 여러 정보를 얻고, 문서로 자료 조사를 하고, 만나서 심문 수사를 하고, 잠복하고 미행하며 들여다본다. 모든 형사의 업무가 이 영화에서는 연애의 과정이라는 거다. 그래서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내 영화 중에 후반 작업에서의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됐다. 극장에서 보실만 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영화 산업이 붕괴되기 직전의 상황에서 '헤어질 결심'뿐만 아니라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브로커'와 '범죄도시2' 편도 봐달라. 꼭 한국 영화가 아니어도 좋다. 모든 영화를 영화관에서 가서 보고,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려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헤어질 결심'은 오는 29일 개봉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