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간 음지에 있던 ‘점술’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두 청년 [강홍민의 라이징 유니콘]

입력 2022-05-31 09:49
수정 2022-06-03 08:47
[라이징 유니콘]은 창업전선에 뛰어드는 수많은 스타트업 중 유니콘으로 성장 가능한 스타트업 CEO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들의 고민과 성장 전략을 들어보고 과연 유니콘으로 성장 가능할지 확인해 보시죠.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앞날이 캄캄한 내 미래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코로나19 이후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점집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2030세대들의 방문이 늘어나면서 점술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 구인구직 포털사이트에서 10~30대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자의 90%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중 △일주일에 한 번(13.3%) △한 달에 한 번(13.3%) △한 달에 2~3번(12%) △매일본다(10.8%) 등으로 집계돼 한 달에 한 번 이상 운세를 보는 이들이 50%에 육박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집일수록 문전성시를 이루며 몇날 며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반면, 미래를 궁금해 하는 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덤터기를 씌우는 무당이나 점집에 입은 피해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액운이 껴 취업이 안 된다’ ‘조상님께 정성을 들이지 않아 베필이 안 나타난다’며 수백, 수천 만 원이 드는 부적과 굿을 강요해 청춘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곳들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던 점술시장을 바꾸기 위해 나선 청년들이 있다. 신점·사주·타로 서비스를 고객과 연결하는 점술 중계 서비스 ‘천명’을 론칭한 유현재, 전재현 천명앤컴퍼니 대표는 스물일곱 동갑내기다. 고려대 출신인 이 둘은 대학시절, 같은 학회에서 창업의 꿈을 키워 2019년 천명을 설립했다. 수천 년 간 음지에서 행해지던 신비한 샤머니즘의 세계를 양지로 끌어낸 두 대표의 창업 전략은 무엇일까.





점술가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은 많지 않나요. 인터넷 광고로 여럿 본 것 같은데요.
유현재(이하 유) : 많죠. 대부분이 전화상담 서비스인데, 이건 10년 전부터 나온 서비스죠. 그 중에서 저희 천명 같은 프리미엄 서비스는 없습니다.

전재현(이하 전) : 천명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생님들의 퀄리티가 차별점이에요. 천명을 통해 서비스하고 싶은 선생님들은 저희만의 검증절차를 거쳐야만 입점 가능하게 만들어 놨어요.

어떤 검증절차인가요.
유 : 천명 서비스를 다수 이용해 본 고객들 중에서 상담 때 문제(마찰)가 없었던 분들에 한해 ‘천명 검증단’이란 걸 만들었어요. 이 검증단이 입점을 희망하는 선생님께 방문을 하는 거죠. 3명의 검증단이 만족하면 입점이 되는 방식입니다.

전 : 검증 절차는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요. 우선 재방문하고 싶은지, 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두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분들은 입점이 가능하게 되죠. 물론 검증을 위해 방문하게 되면 무료로 상담을 받게 해드리고요.

검증단이 방문한다는 걸 선생님들이 아나요? 아니면 암행어사처럼 몰래 방문하나요.
유 : 검증단이 방문하기 전에 미리 알려드립니다.


서비스 이용자 대상으로 ‘천명 검증단’ 선별, 입점 희망하는 점술가를 대상으로 입점 테스트 시행···3인의 검증단에게 통과돼야 입점 가능





그럼 검증단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좋은 점수를 받는 것 아닌가요. 이를테면, 입점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나쁜 얘기보다 좋은 쪽으로 부각을 시킬 수도 있고요.
유 : 사실 좋다는 이야기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잖아요. 단순히 ‘앞으로 넌 잘 될거야’라는 말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해요. 특히 검증단은 점술을 많이 보신 분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주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할 수 있죠.

전 : 저희가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테스트를 많이 거쳤어요. 예를 들어, 한 선생님에게 다수가 상담을 하고, 어떤 스타일의 이용자가 만족하는지를 데이터화하기도 했었고, ‘용하다’ ‘논리적이다’ ‘따뜻하다’ 등 이용자 텍스트 기반으로 분석도 해봤는데, 큰 의미가 없었어요. 어차피 상담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는 상담이 끝난 이후 직관적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두 가지 질문으로 함축했죠.





또 다른 차별점이 있다면요.
전 : 천명의 특징 중 하나가 다시듣기가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천명을 통해 예약하고 상담을 받게 되면 상담내용을 녹취하게 되는데, 언제 어디서나 그 내용을 다시 들을 수 있는 거죠.

그건 좀 새롭네요. 보통 일부러 녹음해서 들키면 못하게도 한다고 들었는데, 모든 선생님이 동의를 했나요.
유 : 처음엔 녹취를 거부하는 분들도 있으셨어요. 자신만의 비책이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였죠. 지금은 절반의 선생님들이 동의해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월 평균 300명의 점술가들이 신청, 입점은 30% 내외···
유명 점술가, 대기자 700여명·8개월 기다려야 하기도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 예치) 시스템으로 고객 보호 기능 추가


점술가들이 플랫폼으로 들어간다는 게 아직까지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입점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유 : 올해 4월 기준으로만 보면 입점 신청한 분이 한 300명 정도인데 입점률은 30%정도예요.





생각보다 신청하는 분들이 많네요. 점술가들이 천명에 신청하는 이유는 뭔가요.
전 : 많은 선생님들이 새로운 고객창출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세요. 주변에 들어보면 유명한 곳은 대기만 몇 개월 혹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그렇기 대기가 많은 선생님들도 1년 후를 걱정하세요. ‘과연 1년 후에도 고객들이 많이 찾아줄까’하는 고민이죠.

유 : 그래서 유명 유튜브 채널에 몇 천 만원의 광고비를 내고 출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비용도 비용지만 효과를 장담할 수 없거든요. 선생님들의 근원적인 고민을 천명 입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혹시 입점한 점술가들의 만족도는 조사 해보셨나요.
유 : 대부분 만족하세요. 특히 복채 지원 이벤트 등을 통해 아주 유명해진 분들은 700명이 넘는 분들이 대기를 하거나 8개월을 기다려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요즘 말하는 MZ세대 중에서 점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편리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고객 확보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전 : 현재 회원 수가 40만 명 정도 되고, 앞으로 회원 확장을 위해 여러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현재 서비스 중인 건 점술과 관련된 콘텐츠예요. 예를 들어, 실제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거죠.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료인데도 퀄리티를 높게 만들어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였죠.

유 : 오늘의 운세 많이들 보시잖아요. 저희도 서비스 중인데, 오늘의 운세에서 운수가 좋게 나온 분들에게 랜덤으로 기프티콘을 드리기도 해요. 저희가 운수 좋은 날로 만들어 드리는 거죠.(웃음)





음지에 있는 서비스를 양지로 끌어낸다는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 한편으론 아직 점술시장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궁금하네요. 이를테면, 비싼 굿이나 부적을 고객에게 강제로 떠넘기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잖아요.
전 : 저희도 그 부분을 고민하고 해결방안으로 찾은 게 에스크로(Escrow/결제대금 예치) 시스템입니다. 창업 초기엔 상담 중계만 했었는데, 입점한 선생님 한 분이 저희 몰래 3천만원이 드는 굿을 고객에게 판 적이 있었어요. 그 분이 돈만 받고 잠적을 해 고객이 소송을 한 사건이었어요. 다행이도 대부분의 금액을 돌려받긴 했지만 그 사건 이후로 안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습니다.

유 : 천명의 서비스는 PC방과 같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만 해도 부모님들이 자녀가 PC방 가는 걸 못마땅해 하셨잖아요. 게임에 빠지는 게 싫어서도 있지만 담배를 비롯해 불량한 이미지가 싫으셨던 거죠. PC방에 흡연구역이 사라지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죠. 점술시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사람들의 경험치가 생기면 결국 인식의 전환되는 시점이 온다고 생각해요.


대학 입시 걱정에 굿에 투자한 돈 삼천만원 날려···
실제 피해 경험이 점술시장 문제점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로 이어져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유 : 대학 때 만났어요. 같은 학회였는데,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셈이죠.

전 : 대학 때 함께 서비스를 만들어 운영한 적이 있어서 서로의 취향을 잘 알죠. 창업을 준비할 때도 그 기준이 명확했죠. 증권사 보고서가 없는 시장인지, 유니콘으로 만들 수 있는 서비스인지, 글로벌 진출이 가능한지였어요. 그 세 가지 질문에 만족하는 아이템이 천명이었고요.

사실 평소 점술에 관심이 없었다면 도전하기 쉽지 않은 분야였을 텐데, 신점이나 사주에 관심이 있었어요.
유 : 개인적으론 많이 이용하진 않았는데, 어머니께선 가끔 보셨죠.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머니께서 저를 서울대에 보내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3천 만원 짜리 굿을 하셨어요. 근데 그 무속인이 돈만 받고 도망을 간 거예요. 당시에 어머니께서 충격이 크셨죠. 저도 피해자로서 이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접근했던 것 같아요.

실제 그런 경험이 창업 자원이 된 셈이군요. 부모님께 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땐 좋아하시던가요.
유 : 아뇨. 처음엔 굉장히 반대하셨어요. 많고 많은 창업 중에 꼭 점술을 해야 하느냐고요. 과거에 한 번 데이셨던 것도 반대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근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셨죠. 아마 알토스벤처스에서 투자를 받아서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전 : 전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어이없다며 웃으시더라고요.(웃음)

동업을 해본 이들 중에는 절대 하지 말라고 말리는 분들이 많잖아요. 두 분의 궁합 맞춰봤나요.
전 : 이 사업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주는 봤는데, 궁합을 본 적은 없어요.

유 : 어차피 결혼하고 궁합은 잘 안보잖아요. 이미 창업으로 결혼한 상태니까 서로 잘 맞춰가야죠.(웃음)





앞으로 ‘천명’이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유 :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첫 번째는 2026년가지 1.4조원으로 추정되는 점술시장에서 대부분의 직거래 서비스를 천명에서 이뤄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점술업계의 딜리버리 히어로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천명 프랜차이즈 매장을 계획 중인데, 더이상 무섭거나 기피대상의 점집이 아닌 누구나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바꾸는 게 목표입니다.

전 : 일본의 점술시장이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약 10조원 정도 되는 시장규모에 9조원 가량이 오프라인 비중인데요. 국내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은 다음 일본을 시작으로 글로벌 진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