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그룹이 삼성SDI의 목표주가를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매도’로 변경했다. 투자와 생산 규모 확대에 소극적이란 이유에서다. 삼성 계열사들이 지난해 240조원, 이달 450조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때도 배터리 분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씨티그룹은 30일 삼성SDI의 목표주가를 93만원에서 48만원으로 48.4% 하향했다. 삼성SDI가 생산하는 각형 배터리 소비가 줄어드는 데다 경쟁업체에 비해 보수적인 증설로 점유율 하락이 예상된다는 게 씨티그룹의 설명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의 올 1분기 점유율은 3.8%로 지난해 1분기(5.8%)보다 하락했다.
씨티그룹 관계자는 “CATL 등 중국 업체의 증설로 각형 배터리 시장의 경쟁이 심화해 삼성SDI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며 “(삼성SDI의 주력 제품인) 각형은 다른 유형(원통형, 파우치형)에 비해 성능이 좋지만,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기술 발전으로 여타 배터리의 단점이 보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SDI가 유일하게 합작법인을 세운 스텔란티스가 배터리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상찮은 해외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목표주가 하향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CATL은 최근 삼성SDI의 최대 납품처인 BMW에 원통형 배터리를 2025년부터 공급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배터리 사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2016년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 이후 삼성SDI의 입지가 삼성 내에서 약화했을 것”이라며 “당시 삼성전자는 계열사 제품 대신 중국 ATL(현 CATL의 전신) 배터리를 썼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증설 경쟁 대신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를 승부처로 삼았더라도 전체 투자 계획에 배터리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지금의 소극적인 행보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미래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SDI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53% 내렸다. 외국인 투자자가 매물을 쏟아낸 영향이다. LG에너지솔루션(2.09%) 등 배터리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것과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