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2002년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대회를 치른 지 20년을 맞았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취소한 것을 제외하면 해마다 대회를 열었다. 오는 10월 열리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은 한국에서 치르는 20번째 LPGA투어 대회다.
변진형 LPGA 아시아 대표(41)는 이 중 절반 이상을 함께했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을 비롯해 스윙잉스커트, 롯데 챔피언십, 메디힐 챔피언십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2008년 LPGA에 입사해 이제 아시아 지역을 이끄는 그를 지난 27일 서울 논현동 LPGA 아시아지부에서 만났다. 변 대표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 속에 LPGA와 한국 여자 골프가 동반 성장한 것 같다”며 웃었다.
변 대표는 골프업계 초고속 승진 신화를 이룬 인물이다. 사원에서 아시아 대표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2000년대 중반 투어 대회 대행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LPGA 관계자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됐다. “처음에는 대회에 있는 비품 등 박스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열심히 했죠. 제일 먼저 대회장에 나와서 제일 늦게 들어갔으니까요.”
입사 3년 만인 2011년 처음으로 부서장(디렉터)이 됐고, 2016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년 뒤인 2018년 지금의 직책인 아시아 대표로 올라섰다. 현재 LPGA투어에서 그의 ‘상사’는 몰리 마르쿠스 대표(CEO)가 유일하다. 그는 “계속 남들과는 다르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지금까지 달았던 직함들이 원래 없던 자리다. 투어에서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려고 한 게 적중했다”고 돌아봤다.
170여 개국에 중계방송을 송출하는 글로벌 투어로 자리 잡은 LPGA투어도 한때 존폐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 땐 LPGA투어 스폰서의 30%가 한 번에 이탈했습니다. 기업이 돈을 아끼면 가장 먼저 정리하는 것이 ‘스포츠 이벤트’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죠. 그 때문에 저희는 후원사들에 투어가 매력적인 비즈니스가 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둡니다.”
변 대표가 대회를 유치할 때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단어 대신 ‘스포츠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그래서다. “LPGA는 수십 개 글로벌 기업과 교류하잖아요. 기업들이 투어를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무대’로 여기도록 노력합니다. 실제로 한 생수 회사가 투어를 후원하면서 월마트와 연결된 것처럼요.”
변 대표는 올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2002년 첫 대회부터 꾸준히 파트너로 함께해온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와 처음으로 각자의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주간에 KLPGA투어는 ‘KH그룹 IHQ 칸배 여자오픈’을 연다. 이맘때 LPGA투어 대회에 참가한 KLPGA투어 선수들을 올해는 볼 수 없다.
변 대표는 “아쉽게 KLPGA투어 선수들의 참가가 불발됐지만, 각 협회가 소속 선수들을 위해 내린 최선의 결정이기 때문에 이를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라며 “두 대회가 모두 성공적으로 치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