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난 뒤 3주 만에 루나(LUNA)가 폭락하며 평생 모은 돈인 6만 2000달러(약 7767만원)를 날렸습니다. 어떻게 할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투자커뮤니티 ‘레딧’에 올라온 한 투자자의 글이다. 그는 결혼자금으로 쓰려던 자금을 잃었다며 호소했다. 국내에서도 ‘빚투(빚내서 투자)’까지 감행하며 루나를 사들인 투자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시가총액 350억달러에 달하던 루나가 이달 초 1주일 만에 99% 폭락하며 벌어진 사태다.
대폭락이 도래하기 전 루나를 매도해 고수익을 올린 투자자들이 나타났다. 29일 CNBC는 미국 헤지펀드인 판테라 캐피털이 발빠른 익절매로 100배 가까운 투자 수익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CNBC에 따르면 판테라 캐피털은 170만달러(약 21억원)를 루나에 초기 투자해서 1억 7100만달러(약 2141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판테라 캐피털의 조이 크루그 최고 투자책임자(CI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보유한 루나의 87%를 매각했다고 말했다.
외부에는 매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댄 모어헤드 판테라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테라와 루나의 잠재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극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루나의 수익률은 1만 5800%에 달했다. 당시 모어헤드 CEO는 “(루나가) 올해 가장 유망한 코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투자자들이 이제서야 루나에 눈을 뜨고 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단계”라고 말했다.
루나는 미국 달러와 1대1 연동(페그)하는 테라의 가치를 유지하려 발행되는 암호화폐다. 현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로 발행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테라는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를 활용한 구조가 적용됐다.
1테라의 가치가 1달러보다 떨어지면 테라 보유자는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맡기고 1달러어치 루나를 받아 이득을 챙길 수 있다. 투자자들이 테라를 매수해 테라폼랩스에 팔면 시장에서 테라의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해 1달러에 연동되는 식이다. 테라를 사들이려 루나를 발행하는 구조다. 루나를 공급해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리란 신뢰가 뒷받침돼야 유지된다.
크루그 CIO는 “2020년과 2021년에 루나를 매각한 이유는 펀드 리스크를 관리하려 자산 분배 재조정(리밸런싱)의 일환이었다”라며 “펀드에서 루나가 자치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다. 자산 하나에 의존할 수 없어서 위험을 감수하고 루나를 매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판테라 캐피털은 이달 초 테라의 1달러 페그(연동)가 붕괴할 조짐을 보이자 보유한 잔여 물량을 모두 매각했다. 크루그 CIO는 “몇 센트만 연동 범위에서 벗어나도 역사적인 화폐 연동이 도래할 거라 예상했다”며 “테라가 달러보다 가치가 떨어지면 루나가 시장에 대량 공급돼 루나 가격이 급락할 거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대폭락 전에 위험을 예지했다. 홍콩에 기반을 둔 CMCC글로벌은 2018년에 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에 초기 투자를 단행했고 지난 3월 전량 매도했다.
CMCC글로벌의 창업주인 마틴 바우만은 “(루나 매각은) CMCC글로벌 기업 실사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시행한 것”이라며 “스테이블 코인이 흥미로운 개념이긴 하지만 규제 당국이 달러 공급을 조작하는 행위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전문 은행인 갤럭시 디지털도 거액을 챙긴 투자업체 중 하나다. 갤럭시 디지털의 창업주인 마이크 노보그라츠는 올해 1월 루나 인지도를 끌어올리려 팔에 루나를 상징하는 문신(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갤럭시 디지털의 올해 1분기(1~3월) 실현 수익은 3억 5500만달러(약 4442억원)에 달했다. 수익의 대부분이 루나 매각에서 이뤄졌다고 CNBC는 분석했다.
암호화폐 전문 VC인 핵 벤처캐피털(Hack VC)도 테라 초기 투자에 참여한 뒤 지난해 12월에 루나를 매각했다. 금융정보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애링턴캐피털과 코인베이스벤처 등 루나 및 테라 관련 기술에 초기 투자를 한 기관투자가들은 2018년부터 3년 동안 2억달러 이상을 벌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