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해도 그것만으로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확장 억제 체계 강화를 관철시켜라.”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 3월 말 박진 국민의힘 의원(현 외교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한·미정책협의단을 미국에 파견할 때 이렇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형 3축 체계란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하는 ‘킬 체인(Kill Chain)’, 요격시스템인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을 지칭한다. 한 외교 당국자는 “3축 체계를 완성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미국의 핵우산 강화가 필요하다는 게 윤 대통령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우리 측 요구 대부분을 들어줘 협의 과정에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북 강경책이 담겼다.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한 확장억제 제공 △고위급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한·미연합훈련 확대 △미국 전략자산 전개 등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책을 뿌리째 바꾸겠다는 신호탄이다. ‘핵 방어’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처음 담겨 주목받았다.
한·미는 왜 대북 초강경 대책에 합의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하는데, 3축 체계 등 우리의 방어망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7차 핵실험 예고가 분기점이 됐다. 핵무기는 전략핵무기와 전술핵무기로 나뉜다. 전략핵무기는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같이 광범위한 지역을 파괴할 수 있다. 운반 수단은 장거리 폭격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이다. 전술핵무기는 전략핵무기보다 소형이고, 폭발 위력이 작아 특정 목표물 또는 작은 범위의 지역 파괴를 목적으로 한다. 전략핵무기를 사용하는 데는 위험 부담이 매우 큰 만큼 실제 전장에선 전술핵 활용도가 높다. 물론 전술핵도 그 어떤 재래식 폭탄보다 살상력이 크다.
북한은 전략핵무기를 수십 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무기를 단거리 미사일에까지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는지는 불확실하다. 7차 핵실험을 거치면 전술핵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군 당국은 예측하고 있다. 북한은 올 들어 17차례에 걸친 미사일 도발을 통해 회피 기동력을 시험했고, 극초음속 미사일, 괴물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한·미 요격망을 뒤흔드는 온갖 미사일을 선보였다. 이런 미사일에 전술 핵탄두를 얹는다면 한국과 주한미군 기지, 주일 미군기지 등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접 노출된다. 한국과 미국이 강경 대응에 나선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ICBM 시험 발사 땐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한국의 대응 미사일 발사 등을 검토해왔는데, 지난 25일 북한의 도발 때 미국과 함께 일부 시행했다. 전략자산은 적의 군사기지와 방위산업 시설 등을 타격하는 무기체계로, 핵 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폭격기 3종(B-52H·B-1B 랜서·B-2 스피릿), F-22 스텔스 전폭기 등이 있다.
이런 위협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건 북한이 핵미사일 공격을 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패를 갖췄느냐다. 핵미사일 하나만 뚫려도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3축 체계 명칭을 되살리고,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다. 그러나 현재로선 초보 단계에 불과하고, 수년 뒤 완성한다고 해도 허점이 많다는 게 전문들의 견해다. 킬 체인 단계에서 선제 타격은 북한이 명백하게 한국을 공격한다는 징후를 보일 때 시행된다. 탐지(1분), 식별(1분), 판단(3분), 타격(25분) 등 모든 과정을 30분 이내에 끝낸다는 계획이다. 한국을 공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정찰위성, 조기경보기, 이지스함 레이더 등을 통해 1차적으로 이뤄진다.
핵무기 관련 장비가 발산하는 음파 탐지를 통해서도 핵 공격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위한 기폭장치 작동 시험도 음파 감지를 통해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발을 앞둔 휴전선의 북한 군 움직임, 군 지휘부와 부대 간 교신 감청을 통해서도 공격 징후를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북한 여러 곳에서 불시에 공격이 이뤄질 때다. 북한이 보유한 수백 기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킬체인으로 30분 내에 탐지해 모두 선제 타격한다는 건 어렵다. 더욱이 북한은 열차, 잠수함 등을 통한 기습 공격 능력까지 보여줬다.
북한은 한두 번의 핵실험을 더 거치면 휴전선에 배치된 수천문의 장사정포에까지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더욱 손 쓸 도리가 없다. 우리 군은 ‘한국판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를 개발할 예정이지만 2035년이 돼야 전력화가 가능하다.
KAMD 요격 시스템도 허점이 많다. 요격은 고층, 중층, 하층 등 3단계로 이뤄진다. 어느 한 층에서 완벽하게 방어하기 힘들기 때문에 2, 3차 다층 요격은 필수적이다. 하층 방어 체계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고도 20㎞ 아래에선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이 담당한다. 20~40㎞에선 국산 천궁Ⅱ(M-SAM)가 요격에 나선다. 그러나 중층과 고층 수도권 방어는 현재로선 뚫려 있다. 40~150㎞ 요격 체계인 사드 1개 포대가 경북 성주에 배치돼 있지만 사거리가 200㎞에 불과하고 미사일 수도 부족해 수도권 방어는 불가능하다. 우리 군은 40~70㎞ 요격용 장거리 지대공미사일(L-SAM)을 개발하고 있으나 실전 배치까지는 4, 5년 기다려야 한다.
초고층 자체 방어는 전무하다. 북한이 올 들어 수차례 시행한 고각 발사 땐 하강 속도가 너무 빨라 초고층 방어가 중요하다. 미국과 일본은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요격고도 500~1000㎞)가 초고층 요격을 담당하는데 한국 이지스함에는 이 무기가 없다.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같이 종말 단계에서 회피 기동을 하거나 마하 10의 극초음속일 경우 어떤 요격 체계로도 막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기능을 갖춘 단·중·장거리를 한꺼번에 섞어 쏘거나 ICBM에 전술 핵탄두를 2, 3개 장착해 발사해도 마찬가지다.
상공에서 터뜨리는 북한의 핵EMP(전자기펄스)도 개발 완성 단계에 진입했지만, 요격 수단으로 사드밖에 없다. 사드 포대를 추가 배치하거나 성주 포대를 이동하지 않는 한 수도권 방어가 힘들다. 핵EMP는 단 한 발에 지상의 전자기기 내부 회로를 태워 순식간에 석기 시대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초강력 위력을 지녔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은 저만치 앞서 달리는데 우리의 방패는 한참 뒤에서 쫓아가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안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전략을 짜야 한다. 윤 대통령이 3축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국과 핵우산 제공 등 확장 억제 체계 강화에 합의한 만큼 실효적인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3축 체계 개발을 앞당길 뿐만 아니라 보강도 시급하게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