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장한나 "빈 심포니와 나의 베토벤이 만나 어떤 소리 빚어낼지 궁금해요"

입력 2022-05-27 18:08
수정 2022-05-27 23:35

“베토벤의 도시(오스트리아 빈)에서 오는 오케스트라와 어떤 ‘베토벤 소리’를 만들 수 있을지 식욕이 무척 당겼다고 할까요. 하하. 딱 맞춘 듯이 이번 주말과 다음주 일정도 비었더라고요.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 만난다는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첼리스트 출신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의 존칭) 장한나(40·사진)는 지난 26일 밤 늦게 서울에 도착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필리프 조르당 빈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지휘자를 대신해 29일(인천)과 31일(부산), 다음달 1일(서울) 차례로 열리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지휘하기 위해서다. 미국 뉴욕에 머물던 장한나는 빈 심포니 측의 ‘대타(代打) 지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25일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27일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요즘 연주자들이 확진되는 경우가 많아 ‘대타 연주’ 공연이 빈번합니다. 일정이 허락하면 연주 프로그램과 오케스트라 등을 보고 기꺼이 대타 지휘를 맡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으니 서로 도와야죠.”

장한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베토벤이었다. 빈 심포니는 내한 공연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과 길 샤함 협연으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29일과 31일)·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6월 1일)을 연주한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저와 ‘15년 지기 친구’입니다. 2007년 제가 지휘자로 데뷔한 성남아트센터 무대에서 연주한 교향곡이 바로 7번이거든요. 빈 심포니에는 빈 특유의 소리가 있을 텐데 제가 추구하는 베토벤과 융합하면 어떤 소리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1994년 12세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이후 ‘스타 첼리스트’로 세계 무대를 누비던 장한나는 본격적으로 지휘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베토벤이었다고 했다. “열여덟 살 때였던 것 같아요. 베토벤 교향곡 악보를 보는데 갑자기 음표에서 빛이 반짝반짝 났습니다. 음악이 살아서 춤추더라고요.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도 기적 같은 음악이었어요. 베토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것 같았죠.”

이후 베토벤 악보를 옆에 끼고 살았고, 틈만 나면 들여다본다고 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1~9번 가운데 7번을 “가장 베토벤스러운, 심지어 베토벤 본인을 능가하는 에너지가 음악이란 옷을 입은 교향곡”으로 표현했다. “베토벤의 삶에는 시련과 고통, 자신과의 싸움 이면에 긍정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인생 자체를 끌어안는 기쁨이 있어요. 그것이 베토벤의 기적이죠. 그 기적을 음악으로 승화한 교향곡이 7번입니다.”

장한나가 빈 심포니뿐 아니라 바이올린 거장 길 샤함과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협연곡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밀도 있게 어우러지는 교향적 협주곡들입니다.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비르투오소(매우 뛰어난 연주 또는 무용 실력을 가진 대가)보다는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음악가에게 어울리는 작품이죠. 그런 면에서 가장 적합한 음악가인 길 샤함과의 협연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2017년부터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장한나는 오는 9월부터 독일 명문 악단인 함부르크 심포니의 수석객원지휘자도 맡는다. 그는 “이 자리도 대타 지휘를 계기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함부르크 심포니 공연에서 건강상 이유로 지휘자가 출연할 수 없게 되자 협연자였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제자인 장한나를 긴급 호출했다.

“당시 제 일정상 두 번의 리허설을 하지 못하는데도 스승님께서 ‘한나는 일단 오면 할 수 있다’고 함부르크 심포니를 설득하셨더군요. 짧은 리허설만으로도 저와 단원들의 합이 잘 맞아 연주가 아주 좋았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심포니 측에서 ‘다음 시즌부터 정기적으로 자주 와 달라’며 수석객원지휘자를 신설한 거죠.”

장한나가 고국 무대에 서는 것은 2019년 11월 트론헤임 심포니의 첫 내한 공연 이후 2년6개월여 만이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에 한국 팬들과 만나 음악을 공유하고 나눴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팬데믹으로 아무 연주도 못한 18개월 동안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도 지휘할 수 있고 함께 연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함께할 연주자들과 무대, 공연장에 오실 청중입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