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춤추는 영상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죠. 넋 놓고 보다가 하차해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친 적도 있어요."
30대 직장인 백모 씨는 최근 왕복 3시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체감상 줄어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꾸벅꾸벅 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보는 영상이 있다고 했다. 바로 K팝 아티스트들의 '댄스 챌린지' 영상이었다.
백 씨는 "틱톡에서 주로 아이돌 댄스 챌린지를 자주 본다. 한때 아이브 '러브 다이브'에 푹 빠졌고, 최근에는 싸이 '댓 댓(That That)' 챌린지를 많이 접한다"고 말했다.
최근 K팝의 글로벌 인기 측정 지표로 '틱톡 챌린지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 앨범 판매량, 음원차트 순위, 유튜브 영상 조회수에서 나아가 이제는 아티스트의 '포인트 안무'를 따라 하고 이를 업로드해 올리는 리크리에이티드 콘텐츠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2020년 1월 지코의 '아무노래'에서 시작된 챌린지 열풍은 어느덧 K팝의 주요 홍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틱톡 챌린지는 아티스트 메시지를 토대로 소통을 강조하는 일반적 SNS 특성에서 나아가 음악적으로도 대중에 어필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틱톡 이용자 10명 중 9명이 '음악적 경험'을 위해 틱톡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틱톡이 올해 발표한 '왓츠 넥스트 2022' 리포트에 따르면 88%의 틱톡 사용자들은 "음악이 앱 경험의 중심"이라고 응답했다. 나아가 틱톡이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는 사용자들의 비율은 66%, 특정 노래와 틱톡을 연결하는 사용자의 비율은 73%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콘텐츠 수가 급증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각 연예기획사도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하는 분위기다. 타 아티스트와 함께한 댄스 챌린지 영상을 지속해서 업로드한다. 한 엔터 업계 관계자는 "스케줄을 하러 가서 챌린지 영상을 찍어오는 게, 마치 하나의 미션이 됐다. 일부러 시간을 내 영상을 촬영하러 가기도 한다"면서 "팬들의 반응도 좋고 '케미'에 따라 붐업되는 효과도 있어 최대한 신경 써서 찍으려는 편"이라고 전했다.
특히 '댄스 챌린지'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K팝이 갖는 고유의 특성과 시너지가 잘 발휘된 영향도 크다. 해외 음악 팬들은 K팝의 매력으로 견고한 완성도, 완벽한 군무 등을 주로 언급한다. 약 15초 길이의 영상으로 대중에 호소하는 틱톡은 비주얼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K팝의 특성과도 부합했다.
틱톡 애용자인 20대 대학생 신모 씨는 "K팝은 포인트 파트 및 안무가 생명이기 때문에 숏폼 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최적화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한국인들은 주로 타이틀곡을 듣고, 그중에서도 후렴구를 좋아하는데 포인트 파트를 가장 효과적, 반복적으로 즐길 수 있어 좋다"며 "음원 사이트에서는 3~4분 동안 1곡만 즐길 수 있지만, 틱톡에서는 3~4분이면 12개 이상의 영상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요즘에는 음원 사이트보다 틱톡으로 K팝을 더 많이 감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틱톡의 성공에 K팝의 기여도가 크다고 볼 수 있는 동시에, K팝 아티스트 또한 이를 통해 얻는 점이 많다. 틱톡에서 지속해서 언급되고 콘텐츠가 발생하면서 차트 역주행에 성공하기도 하고, 수록곡이 관심을 받기도 한다. 아티스트 측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팬들이 먼저 만들어 공유하는 챌린지도 생겨나면서 형태도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제시의 신곡 '줌(ZOOM)'의 경우 팬들이 댄스 챌린지뿐만 아니라 '줌 인 줌 아웃'이란 가사에 맞춰 창의력을 발휘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지난 25일 기준 틱톡 내에서 제시의 음원으로 제작된 영상은 250만 건을 돌파했다.
싸이는 방탄소년단 슈가와 공동 프로듀싱한 신곡 '댓 댓'으로 총을 쏘는 듯한 안무로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발매 한 달 만에 벌써 해당 음원으로 틱톡 내에서 22만 4000개의 영상이 만들어졌다. 특히 싸이와 슈가가 함께한 안무 영상에 '듀엣'이라는 기능을 더해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 춤을 추는 듯한 효과를 준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2월에 발매된 가수 장기하의 신곡은 틱톡에서 공식 챌린지를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사용자들 사이에 내레이션 같은 랩을 따라 하는 챌린지가 만들어지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인기 크리에이터 랄랄이 '부럽지가 않어'의 가사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부러워'라고 재치 있게 개사한 영상도 전소미, 우주소녀 다영 등이 커버하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 25일 기준 '#부럽지가 않어' 해시태그 조회수는 3480만 회를 돌파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이 손쉽게 K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즐긴다는 점이 틱톡의 큰 매력으로 꼽히면서 아티스트들 역시 팬들과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창구로 이를 쓰고 있다.
오는 30일 컴백하는 NCT 드림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숏폼 프로모션을 전개했는데, 틱톡에서 리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조회수가 지난 26일 기준 3억 2500만뷰를 기록했다. 프로모션에 참여한 사람 중 선정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 성수동 사옥에 초대해 함께 틱톡 콘텐츠를 촬영하는, 온-오프라인을 결합한 유형의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다만 쏟아지는 숏폼 콘텐츠 안에서 오히려 '소통'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아이돌 그룹 매니저는 "현장에서는 너도나도 찍으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마치 업무화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한 엔터 업계 관계자는 "아티스트와 팬들이 거리적, 물리적 장벽을 넘고 함께 즐긴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성장한 놀이 문화인 만큼, 자칫 과도한 마케팅 화가 '자발적 참여'의 수명을 줄이진 않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한국 가수의 음악과 춤이 손쉽게 전 세계인들에게 도달되고, 이를 따라 하고 있다. 보고 듣는 K팝에서 즐기는 K팝으로 발전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K팝의 지속적인 글로벌 인기를 위해서도 건강한 챌린지 문화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