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 세 명의 장·차관에 모두 여성을 발탁하자 정치권 등에선 “새 정부 인사 기준과 원칙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실력주의 인사 원칙을 내세우며 성별, 지역 등에 따른 안배를 크게 고려하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날 인사를 계기로 향후 고위공무원과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능력뿐 아니라 성별, 지역, 출신 학교 등을 적극 고려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성 장관 5명으로 늘어
박순애·김승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18개 부처 중 5개 부처(28%) 장관이 여성으로 채워진다. 문재인 정부 첫 조각 당시(5명)와 같은 비율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인사에 앞서 참모들에게 “남은 부처 장·차관을 임명할 때 여성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정 없으면 그때 남성으로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직 인사에 여성들이 홀대받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부 내에선 윤 대통령의 인사 참모들이 성별뿐 아니라 지역, 대학 안배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군 수뇌부 인사를 통해 대장 7명을 모두 교체하면서 출신 지역을 서울, 경북(2명), 전북, 부산(2명), 충남 등으로 안배했다.
이런 기조는 출범 직후 내각과 비서실 인선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지역·여성 할당을 인사 원칙에서 배제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국민을 제대로 모시려면 각 분야 최고 경륜과 실력 있는 사람으로 모셔야지, 자리 나눠먹기 식으로 해서는 국민 통합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전후 단행된 내각과 비서실 인선에선 서울대, 50대, 남성 위주의 인사 특징이 드러나면서 ‘서오남’이라는 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서울대 출신 인사 비중이 높다’는 지적에 “아프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인사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런 지적을 소화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때부터 변화 조짐인사 기조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이다. 당시 외신 기자가 “지금 (한국의) 내각에는 남자만 있다”며 “남녀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느냐”고 돌발 질문을 하자,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무관한 질문인데도 “(여성들에게)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답변했다. 24일 국회의장단을 대통령실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내각 인선 과정에 여성이 소외받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시야가 좁았다”며 “이제 더 크게 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관가에선 인재풀이 넓어지고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많다. 다만 일부에선 여성이나 지역 할당을 하는 과정에 인사를 서둘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교육 행정에 전혀 경험이 없는 박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에 내정된 것이 대표적이다. 박 후보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무·사법·행정분과 인수위원을 맡아 조각 당시엔 행정안전부나 환경부 장관 하마평에 올랐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