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아파트숲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 백화점이었네!

입력 2022-05-26 16:55
수정 2022-06-02 19:08

백화점은 오페라다. 눈이 아찔해지는 다양한 상품을 한 장소에 모아 놓고 우리의 욕망을 유혹하는 장소이자 ‘자본주의의 꽃’이다. 이 정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곳이 있다. ‘갤러리아 광교’다. 광교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이곳은 단순한 쇼핑이 아닌, 힐링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원신희 건축가(간삼건축 상무)의 손에서 탄생했다. 신도시 한가운데 큰 퇴적암이?
신분당선 광교중앙역 4번 출구에서부터 10분가량 걷다 보면 특이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뚝 솟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거대한 운석 하나가 떨어져 열을 식히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물길처럼 건물을 휘감고 있는 유리창에는 햇살이 반사된다. 눈을 즐겁게 하는 외관 때문에 바로 건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에 자리한 이 건물은 지하 1층~지상 12층, 연면적 15만㎡(영업면적 7만3000㎡) 규모의 백화점이다. OMA건축사사무소와 간삼건축사사무소가 공동 설계해 2020년 3월 문을 열었다.

“백화점업계는 온라인 매장과 전쟁 중이에요. 생존을 위해서는 기존 백화점과 180도 다른 획기적인 전략이 필요했죠. 쇼핑이 아닌, 커피 한 잔 하러 오는 공간. 매력적이지 않겠어요?”

그렇게 생각해낸 게 ‘빛’이다. 갤러리아 광교는 국내 백화점 최초로 모든 층에 빛이 들어오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전까지 백화점엔 창문이 없었다. 시계도 없었다. 쇼핑객들이 건물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야 더 많은 시간 실내에 머물며 쇼핑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백화점의 마케팅 방법은 건축가들의 손에서 뒤집혔다. 더 오래 붙잡기 위해 과감하게 빛을 활용했다.

“물건을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공간’이 돼야 했어요. 주변 호숫가와 멋진 건물들이 있어 ‘호수뷰’와 ‘시티뷰’를 동시에 누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었죠.”


빛을 들여오는 창구로 유리 ‘루프’가 쓰였다. 프리즘을 연상시키는 540m 길이의 긴 유리 띠가 건물 외벽을 감싼다. 총 1451장의 삼각 유리로 만들어진 이 루프 안은 다양한 경험으로 채워진다. 빛을 따라 걸으며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아트로드’에는 유명 작가의 아트워크를 배치했다. 3층과 10층에는 계단형 광장 ‘루프 스퀘어’를 뒀다. 이색 예술 작품의 전시회가 1년 내내 열린다. 8층에서 9층으로 올라가는 구간에 자리한 ‘스카이 브리지’는 사방이 유리로 만들어져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루프가 감싸고 있는 외벽은 퇴적암 문양에서 착안했다. 건물 자체의 콘셉트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는 큰 바위’. 실제로 손바닥만 한 퇴적암을 확대한 문양을 패턴화해 14가지 종류의 화강석과 12만5000장의 석재로 구현했다. 당초에는 트래버틴 대리석(구멍이 많이 뚫린 자재)으로 외벽 시공을 하려다 산성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을 고려해 단단한 화강석으로 대체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두의 쉼터’로 자리잡다
화려한 외관만큼이나 실내에도 건축적 볼거리가 가득하다. 모든 층은 매장 특성에 따라 다른 콘셉트로 연출했다. 명품관이 들어선 2층은 보석함, 여성 매장인 3~4층은 실내 쇼윈도, 남성 매장인 5층은 트랜스포머 벽을 구성한 식이다. 스포츠 매장이 들어선 7~8층에는 천장에 형광등을 육상트랙 모양으로 달았다.

“내부를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이동의 순간에도 층에 따라 달라지는 개성 넘치는 독특한 공간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설치 미술품도 눈을 사로잡는다. 1층 정문에서는 수백 개의 빛으로 구현된 오로라 조형물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출입구 천장에 자리한 오로라 작품은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이어진 수백 개의 원기둥과 그 속의 LED 모듈을 이용해 연출했다.

갤러리아 광교에는 지난 2년간 연령대와 성별 관계없이 많은 이들이 머물다 갔다. 반경 7㎞ 이내 수원, 용인뿐만 아니라 화성, 오산, 성남, 평택 등 원거리 거주자들도 자주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LG시그니처 키친스위트 매장 등 가구 특화 매장은 ‘혼수의 성지’로 자리 잡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삼성 프리미엄 스토어는 지난해 전국 매출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