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병 케어닥 대표(33·사진)가 대기업 입사를 앞두고 아일랜드로 떠난 것은 2014년이었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던 박 대표는 아버지가 중풍 후유증으로 쓰러지자 삶의 허무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고모,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박 대표와 가족에게 ‘희생’은 ‘일상’이었다. 아버지가 또다시 병상에 눕자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라는 회의감이 몰려왔고, 박 대표는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676일간의 세계일주로 이어졌다. 처음엔 ‘잘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떠났다. 스위스의 안락사 단체, 케임브리지대 생물학 교수, 우루과이 대통령, 볼리비아의 노숙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인터뷰를 ‘시골 백수’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에 올리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가 배운 것은 역설적으로 ‘잘 죽는 법’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 아프면 병상에 머물며 노후를 보내고, 나머지 가족들이 희생하며 돌보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여기서 벗어나 ‘죽음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박 대표가 한국에 돌아온 뒤 2018년 고령층 돌봄 플랫폼 ‘케어닥’을 창업한 배경이다.
케어닥은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환자와 간병인·요양보호사를 연결(매칭)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의 보호자가 앱을 통해 간병인의 신상(프로필)을 직접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다.
기존에는 보호자가 알선업체에 간병인을 요청하면 업체가 무작위로 간병인을 골라 보냈다. 얼굴도, 나이도, 경력도 모르는 간병인에게 가족을 맡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와 간병인이 갈등을 빚는 일이 많았다. 케어닥을 이용하면 보호자는 간병인의 사진, 인적 사항, 경력, 자격증, 비용 등을 미리 보고 선택할 수 있다. 다른 보호자들의 후기도 볼 수 있다.
매칭 서비스만이 아니다. 전문적인 간병 인력을 키워 ‘질 높은 돌봄’을 제공하는 게 케어닥의 목표다. 박 대표는 “지금껏 알선업체들은 인력 교육과 관리보다는 중개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케어닥은 간병인에게 ‘케어코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등이 진행하는 교육과정을 받도록 한다. 전문적 교육을 받은 케어코디는 환자와 매칭되면 매일 돌봄일지를 작성해 보호자에게 보내준다.
사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20년 매칭 서비스를 출시한 지 약 2년 만에 누적 거래액이 640억원을 돌파했다. 케어닥이 관리하는 케어코디는 월 활동 기준 2000명이 넘는다. 최근 156억원 규모의 초기 단계 투자 유치도 마쳤다. 뮤렉스파트너스와 롯데벤처스 등이 참여했다. 케어닥의 중장기 목표는 고령층 ‘케어’에서 더 나아간 ‘헬스케어’ 플랫폼이다. 박 대표는 “어르신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건강관리 및 재활 서비스까지 제공해 돌봄을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