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생활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 따지는 유엔 기구의 조사에서 한국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산하 이노첸티 연구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 회원국을 대상으로 아동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조건을 조사한 결과를 24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한국의 종합 순위는 39개국 중 32위로 하위권이었다. 스페인, 아일랜드, 포르투갈이 1∼3위를 차지했고 일본은 13위에 머물렀으며 미국은 37위까지 떨어졌다.
연구소는 평가항목을 '아동의 세상', '아동 주위의 세상', '세상 전반' 등 3개로 나눈 뒤 각 기준에 따라 점수를 책정했다.
아동이 직접 노출되는 대기·수질, 식량, 납 노출 등 유해 물질을 기준으로 삼은 '아동의 세상'에서 한국은 16위였다.
같은 항목에서 핀란드, 일본, 아이슬란드가 차례로 1∼3위였고 미국은 20위였다.
아동이 오가는 녹지와 도로 등 주변 환경과 과밀화 등 주거·공공환경을 살펴본 '아동 주위의 세상'에서 한국은 32위에 그쳤다.
한국은 특히 세부 항목인 '도시 녹색공간 지수'에서 이스라엘과 공동 최하위(6점 만점에 2.7점)로 떨어졌다.
한국은 자원 소비, 탄소 및 전자폐기물 배출 등 환경 기여도를 평가한 '세상 전반'에서도 31위로 부진했다.
보고서는 또 선진국이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인구가 OECD나 EU 회원국 국민처럼 자원을 소비한다고 가정하면, 지구가 3.3개는 있어야 소비량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캐나다와 룩셈부르크, 미국 등은 정도가 더욱 심각해 이들 국가 국민처럼 자원을 쓴다면 지구가 최소 5개 정도가 돼야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 사람처럼 소비한다면 지구 3.9개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그나마 스페인과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이 상대적으로 어린이가 살기 좋은 환경이고 대외적으로도 환경 문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비교적 작은 편으로 조사됐다.
다만 결론적으로 연구소는 국내외적으로 어린이에게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는 데 '합격점'을 받은 OECD와 EU 국가는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선진국인데도 불구, OECD와 EU 회원국 상당수에서 어린이들이 오염 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아이슬란드와 라트비아, 포르투갈, 영국 등지에서는 어린이 5명 중 1명이 습기와 곰팡이에 노출된 채 생활하고 있고, 이 비율은 사이프러스와 헝가리, 터키 등지에서는 4명 중 1명꼴로 올라갔다. 아동이 집 안팎에서 대기 오염에 노출되는 데는 멕시코와 콜롬비아가 가장 심각했다.
연구소는 초미세먼지 수치와 관련해 2019년 통계를 인용했는데, 한국이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27.4㎍/㎥)를 기록했다.
유니세프는 보고서에서 각국 정부가 쓰레기와 대기·수질 오염을 줄이고 양질의 주거환경을 보장하며, 정책 설계 과정에서 아동을 더 고려함으로써 어린이 생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