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CPTPP는 윤석열 정부 통상 리더십의 첫 시험대

입력 2022-05-24 17:28
수정 2022-05-25 00:08
‘제조업 수출 연간 10조원 이상 증가 vs 농업 생산 2조1700억원 감소.’

정부가 내부적으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시 예상되는 분야별 경제 효과를 비교한 결과다. 이 숫자에는 윤석열 정부가 CPTPP에 가입하려는 이유와 문재인 정부가 가입을 미뤄온 이유가 동시에 담겨 있다. CP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초대형 자유무역협정(FTA)체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무역의 15.2%(5조7000억달러)를 차지했을 정도다. 한국이 여기에 가입할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5%포인트 증가하는 등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당시인 지난달 가입 신청하기로 계획을 확정했다. 조만간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한 뒤 정식으로 가입 신청을 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산업별로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CPTPP 가입으로 한국은 15년간 제조업 순수출이 연평균 6억~9억달러(7590억~1조1380억원) 증가하는 반면, 농·축산업은 연평균 853억~4400억원 생산이 감소할 전망이다.

한국보다 먼저 CPTPP에 가입을 신청한 중국이 함께 가입한다면 분야별 희비는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외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에서는 제조업에서 연간 10조원 이상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산업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농촌경제연구원은 중국과 한국이 CPTPP에 동시 가입할 경우 농업 분야에서 연간 2조1700억원의 생산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CPTPP의 경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가입 신청을 미루다가 결국 윤석열 정부에 떠넘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CPTPP 가입 신청이 지연될수록 세계 무역질서에서 소외되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다. 문제는 농업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는 것이다. 농어민 단체인 ‘CPTPP 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집회를 여는 등 농업계는 벌써부터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단체까지 가담하는 움직임이다.

이제 CPTPP 가입 문제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신임 장관들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농업계를 설득하고 식량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다음 정권에 가입을 떠넘기려면 5년이 지나야 한다. 지금 정부가 매듭을 묶지는 않았지만, 푸는 역할을 피해선 안 된다. 그게 윤석열 정부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