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1일 첫 수석비서관 회의 일성은 “구두 밑창이 닳도록 일하자”였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첫 주말이던 14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새 구두를 장만했다. 최근 인터넷 등에서 ‘대통령의 구두’가 새삼 주목받은 결정적 장면이다.
패션그룹형지 에스콰이아의 김학진 장인(60·사진)은 한국에서 역대 대통령의 발과 구두에 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1979년부터 40여 년간 남성 구두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다섯 대통령의 구두가 포함돼 있다.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른 대통령의 구두 얘기를 듣기 위해 24일 서울 역삼동 형지 에스콰이아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김 장인은 “대통령 구두를 만들다 보면 그분들 성격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며 얘기를 꺼냈다.
에스콰이아는 그가 강원 홍천에서 상경해 1979년 입사한 첫 직장이다. 대통령 신발 제작에는 1986년부터 참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골프를 좋아한 전 전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의 골프화를 만드는 게 그의 첫 임무였다. 청와대를 들락날락하던 선배가 대통령 발 사이즈를 재오면 그가 제작을 맡았다.
김 장인은 “여러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걷는 게 불편했던 분이어서 볼로냐 공법을 이용해 최대한 편하게 신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볼로냐 공법은 중창이 없어 부드럽게 꺾이고, 땀 흡수가 잘 되도록 구두를 만드는 방식이다.
김 장인이 ‘이 사람 참 깐깐하겠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구두에 대해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아 생생히 기억해요. 전체적인 디자인과 굽 높이까지 세세하게 주문했지요.” 이에 반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어떤 구두를 전달해도 별말이 없어 ‘군인다운 호방한 성격이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네티즌 사이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슈트 핏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꼽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두도 ‘멋쟁이 스타일’을 선호했다. 김 장인은 “이 전 대통령은 코가 뾰족하고 세련된 ‘차도남’ 스타일 구두를 선호했다”며 “구두를 총 여덟 켤레 납품했다”고 했다.
그는 여러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었지만, 윤 대통령의 구두 제작 요청은 아직 못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 어울리는 구두 스타일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윤 대통령은 터벅터벅 걷는 스타일이어서 굽이 낮거나 아예 없는 구두가 잘 맞을 겁니다. 기회가 닿으면 은퇴하기 전에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요.”
구두산업에 40년 넘게 종사했지만, 그에게 구두 제작은 여전히 어렵다. 김 장인은 “최신 유행에 맞춰 상품을 내놓으면 항상 부족한 부분이 생겨 배우게 된다”며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게 구두”라고 말했다.
구두를 잘 신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패션 감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고 생각합니다. 2030세대 중에 격식 있는 정장이나 예쁜 치마에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있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은 것은 아쉬워요.”
배정철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