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대출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줄어들지 않던 가계 대출이 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전망이 이어지면서 처음으로 꺾인 것이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가계 신용(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가계 신용 잔액은 1859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6000억원 감소했다. 가계 신용은 일반 가정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거나 외상(할부)으로 물품을 구입한 대금 등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 가계 신용이 줄어든 것은 지난 2013년 1분기 이후 9년 만이다.
가계 대출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가계 대출은 1752조7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1조5000억원 감소했다. 가계 대출이 줄어든 것은 2002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처음이다.
가계 대출은 한때 기준금리가 연 5%를 넘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줄어들지 않았다. 2008년 1분기 가계 대출은 641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630조1000억원) 대비 11조6000억원 늘어나는 등 증가세가 이어졌다. 통계 작성 이후 첫 감소 그렇다면 가계 대출은 왜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대출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명분으로 개인별로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했다. 현재 DSR 규제는 가계 대출액이 2억원을 넘을 때부터 적용된다. 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40%(비은행권 50%)를 넘을 수 없다. 이런 내용은 지난 1월부터 시행됐다. 추가로 대출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기준금리가 오를 것이란 전망도 가계가 '대출 구조조정'에 나선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경기 침체로 '금리 인하'가 예상됐다. 실제 2008년 8월 연 5.25%였던 기준금리는 2009년 2월 연 2%로 반년 만에 3.25%포인트가 인하됐다.
현재는 물가상승률이 4%대로 고공 행진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된다. 한은은 지난 4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연 1.5%로 상향 조정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26일 열리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금융위기 때에는 금리가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컸고, 지금은 금리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며 "가계가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대출을 추가로 늘리지 않거나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줄어드는 '빚투'도 영향'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식은 것 역시 가계 대출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가계의 금융 자산 내 주식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20%를 웃돌았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주식과 암호화폐 시장이 활황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가계 대출 증가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빚투 열풍이 소강상태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4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빚투에 활용되는 신용대출이 포함된 기타 대출 잔액(272조1000억원)은 전달 대비 9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2월(-2조원)과 3월(-3조1000억원)에는 기타 대출의 감소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송 팀장은 앞으로 가계 대출 감소세가 이어질지에 대해 "대출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측면이 있고, 주택 거래도 활발하지 않아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용카드 할부액 등 가계의 판매 신용은 106조7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8000억원(0.8%) 증가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