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기업 美상폐 리스크' 촉발한 디디추싱, 주총서 상폐 결정

입력 2022-05-23 11:16
수정 2022-05-23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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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증시에 상장했다가 호된 고초를 겪은 디디추싱이 23일 주주총회에서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뉴욕을 떠난 뒤 홍콩증시에 재상장한다는 디디추싱의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무더기 상폐 리스크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디디추싱은 이날 오후 8시(베이징시간 오후 7시, 뉴욕시간 오전 7시)에 베이징 하이뎬구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었다. 하이뎬구가 전날부터 1주일 일정으로 코로나19 방역 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에 실제로는 컨퍼런스콜로 주총을 진행했다.

안건은 뉴욕증시 상장을 폐지할 것인가다. 디디추싱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번 투표는 1주당 1표로 진행했다. 투표 결과 찬성률이 96%에 달해 안건이 통과됐다. 48%를 가진 경영진과 주요주주는 물론 기관투자가들도 대부분 디디추싱의 계획에 긍정적이어서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개인투자자들도 상당수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디디추싱은 지분과 의결권 분포가 다르다. 청웨이 회장이 지분 6.5%에 의결권 34.5%를, 류칭 사장이 지분 1.6%에 의결권 22.7%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소프트뱅크로 지분 20.1%에 의결권 10.7%를 갖고 있다. 2대주주인 우버가 지분 11.9%에 의결권 6.4%, 3대주주 텐센트가 지분 6.4%에 의결권 3.4%를 각각 들고 있다.

디디추싱은 지난해 6월30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중국 당국은 디디추싱 상장 직후 국가안보 조사에 착수했다. 디디추싱이 갖고 있는 방대한 운행 정보가 미국 정부로 흘러가면 국가안보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중국 당국의 우려다.

당국이 만류하는데도 디디추싱이 상장을 강행한 것은 소프트뱅크 등 최대주주의 압박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적 악화를 겪고 있던 소프트뱅크는 디디추싱 상장으로 평가이익을 끌어올려야 할 상황이었다. 디디추싱이 중국공산당 100주년인 7월1일 직전에 상장한 데에는 당국이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상장을 중단시키면서 축제 분위기를 해치진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 당국은 국가안보 조사에 착수하면서 디디추싱의 신규 회원 모집을 중단시키고 20여개 앱을 중국 내 모든 앱스토어에서 내리도록 했다. 90% 이상이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이후 상당히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디디추싱의 공모가는 14달러, 상장 직후 시가총액은 680억달러에 달했다. 최근 주가는 공모가 대비 90% 하락한 1.5달러대다.

디디추싱은 결국 지난해 말 뉴욕 상장을 자진 폐지하고 홍콩 등 다른 글로벌 거래소에 다시 상장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뉴욕에서 떠나야 국가안보 조사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디디추싱은 뉴욕 상장 폐지 후 해당 주식을 홍콩거래소에 다시 상장해 주주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사례가 처음이어서 홍콩 주식계좌가 없는 미국 투자자에게 어떤 보완책을 제시할 것인지 등 후속 문제가 쌓여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이전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투자자문사 챈슨의 선멍 국장은 "디디추싱의 상장 폐지가 확정되면 미국에 상장한 중국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디디추싱이 계획대로 홍콩에 상장하고 기업가치도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오히려 미국 상장 중국 기업의 전반적인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했던 알리바바 등 다수 기업이 홍콩증시에 2차도 상장한 상태다.

디디추싱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는 미국에 상장한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은 디디추싱 사례 이후 회원 100만명 이상의 인터넷 기업이 해외에 상장하려면 국가안보 조사를 반드시 통과하도록 했다. 기존에 미국에 상장해 있는 중국 기업들에는 이런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중국 당국이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미국 기구의 회계 검증을 3년 연속 받지 않은 외국 기업을 증시에서 퇴출하는 외국회사책임법을 2020년 말 입법했으며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올들어 2021년 회계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중국 기업을 담은 '예비 상장폐지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현재 150여개 기업이 올라가 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