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상회담에서 누구보다 더 오래 윤석열 대통령의 곁을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을 통역했고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외교관, 바로 김일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입니다.
김 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찍힌 사진 어디에나 빼꼼히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첫날인 지난 20일 평택 삼성반도체캠퍼스에서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만남부터 평택1·3(P1·3)라인 시찰, 21일 한·미정상회담의 그 순간까지 대통령 옆에서 '그림자 통역'을 했습니다.
의전비서관이 대통령의 통역까지 직접 맡는 모습은 이례적입니다. 의전비서관은 정상회담 등 주요 행사의 모든 이벤트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석자 명단을 조율하고, 대통령 동선을 관리하고, 이벤트에 필요한 음악과 공연도 기획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김 비서관이 직접 통역을 맡은 것은 스포츠 경기로 비유하자면 감독이 직접 선수로 뛰는 '플레잉 코치'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 비서관은 왜 직접 통역까지 맡았을까요.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 비서관을 워낙 편안해하고 통역 능력도 출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비서관은 윤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부터 외신 공보담당 보좌역을 맡아 곁을 지켰습니다. 김 비서관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살아 윤 대통령과 '이웃 주민'이기도 합니다.
김 비서관의 통역 능력은 그의 이력에서 증명됩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김 비서관은 1999년 33회 외무고시에 합격했습니다. 당시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두 명이 모두 외교관 아버지를 둬서 화제가 됐는데요, 김 비서관은 김세택 전 오사카 총영사의 아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을 많이 다녀 유창한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스페인어 등 제2외국어 실력도 갖췄다고 합니다.
이후 김 비서관은 주미한국대사관에서 서기관, 행정관을 맡았고 주이라크 대사관 행정관, 지역공공외교담당관을 거쳐 북미국 북미2과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임했습니다. 외교부 내에서는 북미국 등 한미관계를 주로 다루는 '워싱턴 스쿨'로 알려졌습니다.
김 비서관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네 명의 대통령을 통역한 '대통령 통역가'로서의 경력입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세 명을 연이어 보좌한 것도 독특한 이력인데 이번에 네 번째로 윤 대통령을 통역하게 된 겁니다.
대통령의 통역은 단순 언어 실력을 넘어 경제·산업·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사전지식을 갖춰야 하는 일입니다. 정상 혹은 주요인사와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현안을 이해하고 맥락에 맞춰 번역해야 하기 떄문입니다. 통역가로서 김 비서관의 전문성을 이 대통령들이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었던 김은혜 국민의힘 경지지사 후보는 김 비서관의 외신 담당 공보보좌역 인사를 발표하며 “민간기업에서는 글로벌 사업 전략을 담당했지만, 여러분이 많이 아시는 국내 최고 실력파 외교관 출신인 분”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후보가 말했듯 김 비서관은 민간 기업에서 글로벌 감각을 갖추기도 했습니다. 2019년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SK 수펙스추구협의회 부사장을 맡은 것입니다.
당시 SK는 미국 제약회사 엠팩(AMPAC)을 인수한 데 이어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에 1조원을 투자하는 등 북미지역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미국 정관계 사이를 연결하는 데 중요 역할을 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입니다.
'배우 박선영의 남편'은 김 비서관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박선영 씨가 2010년 결혼을 발표할 당시 김 비서관은 '엘리트 외교관'으로 소개되며 화제가 됐습니다. 김 비서관과 박 씨는 2003년부터 교제해 7년간 연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혼 당시 박 씨는 김 비서관에 대해 "소탈하고 털털하며 매사에 똑 부러지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2012년에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남편이 나를 토끼라고 부른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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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