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지고 온 산천을 활보하며 유통하던 농경시대나, 달구지 수레로 물건을 나르던 시절엔 도로망도, 도시 공간계획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 속, 급격한 경제 성장과 팽창을 거듭한 우리의 도시 문제는 이미 범람한 강물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인구 폭발과 더불어 급증한 자동차로 뒤엉킨 도로의 교통체증 문제에 직면했다. 그 당시 ‘도시는 선이다’라는 인상 깊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대도시 도로 소통의 핵심을 짚은 명쾌한 표현이었다.
도시가 번잡하고 자동차가 도로 위에 가득하더라도, 도로 차선을 존중하고 그 연속성에 순응하며 주행한다면, 최소한의 질서 있는 교통체계가 운영될 수 있다는 의미다. 차선 존중의 1차원적 도로 운용 윤리를 누군가가 제시했었다면, 나는 ‘도시는 면이다’라는 기치로, 도시 가로의 연속성을 조성하는 활력적 입체 도시공간을 제시해 본다.
우리는 흔히 이탈리아의 피렌체나 낭만적인 프랑스 파리, 그리고 역동적인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멋진 도시로 생각한다. 이 도시들은 외관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지역을 문화적으로도 대변한다. 또한 르네상스나 아르데코의 시대 그리고 세계금융의 중심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도시는 그 시대성을 대표한다. 어떻게 이곳들은 수려한 도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됐을까?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도시 전역에 걸쳐 인간 중심의 가로가 활성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건물의 장식적 모습이나 현란한 상가 간판에 있지 않다. 도시의 풍요와 역동성은 무엇보다 가로를 형성하는 건축물의 연속적 입면으로 조성되는 도심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 샹젤리제 거리나 브로드웨이 같은 장소에서 쉽게 체험하지만, 본질은 형태적 화려함보다 가로변 건축물의 연속된 입면으로 뚜렷한 도심 공간이 형성될 때, 비로소 수려한 도시의 모습이 갖춰진다.
건축물 자체가 아무리 근사하더라도 외톨이처럼 주변과 조화되지 못하고 연속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단편적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개성만 드러내며 튀는 건물로 건설되는 개발일수록 제대로 된 길 하나 찾을 수 없다. 드리워진 가로면 연속성의 유무에 따라 휑한 난개발이 될 수도, 시민의 삶을 담는 충만한 길과 광장이 되기도 한다. 삶의 현장을 관통하는 연속된 면은 역동적인 도심 공간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시민들은 활기차게 살아가게 된다.
흔히 건축을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들 말한다. 그럼 도시 가로는 ‘시민의 생기를 담는 광주리’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코로나의 그림자가 걷어지고, 연속된 가로면으로 이뤄진 활기찬 도시에서 오늘 같은 날, 즐겁게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