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의 원전업체 대표 A씨는 “공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공작기계를 볼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고 했다.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협력사인 이 회사는 늘어나는 물량에 맞춰 공장 증설과 함께 기계를 새로 들였다. 하필 이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버렸다. 일감이 하나둘 끊기더니, 기술력 좋은 기능공들이 떠났다. 요란했던 기계음이 사라진 공장을 대신 채운 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와 그나마 남은 직원 월급 걱정에 터져 나오는 한숨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은 창원지역 원전업체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냈다. 꺼져가는 원전산업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세계 최고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의 조속한 재개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가’였다. A씨는 “오히려 원전 해체산업을 대안으로 키우겠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역 원전업체들은 잃어버린 5년을 버텼다. 그러는 사이 값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산과 논을 뒤덮는 걸 하릴없이 지켜봐야 했다.
일감이 끊긴 것보다 지역 원전업체들을 더 힘들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자괴감이다. 창원의 원전업체 사장은 “탈원전 정책이 무슨 사회운동처럼 여겨질 때마다 기업인으로 평생을 바쳐온 일이 ‘해로운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산에너빌리티 협력업체들은 전 정부의 정책 전환이 급진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최소한 협력사들이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고 적응하는 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줬어야 했다는 하소연이다. 그걸 무 자르듯 단칼에 ‘탈’해 버리니 손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창원상공회의소도 지역을 대표해 정책 전환의 속도 조절을 요청하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렸지만 탈원전이라는 대의 앞에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새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했다. 해외 원전 수주에도 나선다고 한다. 지역 원전업체로서는 반색할 일이다. 문제는 또다시 속도다. 신한울 3·4호기만 해도 3년 뒤인 2025년에나 착공 가능하다는 소식에 원전업체들은 할 말을 잃은 상황이다. 일감이 나올 때까지 누가 버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한계 상황은 기업금융 쪽이 먼저 귀신같이 안다.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대출금을 회수하려 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과 더 갑작스럽게 다가온 코로나까지 견뎌내야 했던 지역 원전업체들의 사투는 탈원전 정책 폐기 선언 이후에도 쉬 끝날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