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하려면 쿠르드족 테러범 넘겨라" 제동

입력 2022-05-19 15:36
수정 2022-06-17 00:03

터키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제동을 걸었다. 자신들의 안보 요구도 동일선상에서 받아들여져야 두 국가의 NATO 가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날 NATO의 각국 대사들이 모여 스웨덴과 핀란드의 가입 신청건에 대한 협상에 착수했지만, 터키 대사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NATO에 들어가려면 30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한다. 한 터키측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 회원국이 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다"며 "우리의 요구사항을 빨리 들어줘야만 두 국가의 가입 논의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터키 남부 등을 중심으로 쿠르드족의 자치권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터키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 의원 6명이 스웨덴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등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PKK를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NATO 가입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스웨덴과 핀란드에 피신해 있는 30명의 PKK 테러범들에 대한 신병을 우리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맹국이라면 안보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면서 "우리의 안보 요구가 결여된 안보 조직에 대해서는 그 어떤 동의도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터키 정부는 스웨덴과 핀란드 등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함께 2019년 터키에 부과한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해줄 것도 요구했다. 당시 유럽연합(EU) 일부 회원국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터키에 무기 금수 조치를 단행했는데, 이를 풀어주는 걸 스웨덴 등의 NATO 가입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CNN 등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미국 정부가 판매를 거부한 바 있는 F-35 전투기 구매를 재승인해달라고 물밑에서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터키가 러시아산 무기를 대량 사들였다는 이유로 F-35 전투기 판매를 불허했었다.

이날 EU는 대(對)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리파워EU'를 발표했다. 또 탄소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수준 대비 55%로 줄이기로 한 'EU그린딜'의 자금 집행 계획도 구체화했다. 2027년까지 러시아산 석탄, 원유, 천연가스 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2100억유로(약 280조원)를 태양광 발전과 같은 청정에너지 인프라 설비에 투입하겠다는 선언이다. 2030년까지는 총 3000억유로를 들일 계획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산 에너지의 수입을 중단하는 제재안에 대비하기 위해 2030년까지 그린에너지 발전 비율을 40%로 확대하는 기존 목표치를 45%로 상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리파워EU에 따르면 2030년까지 EU의 재생에너지를 통한 총 발전 용량은 1236GWh로 현재보다 두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FT는 "리파워EU 계획으로 인해 EU가 회원국들에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더 많이 허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EU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에서 급격히 빠져나오려하는 탓에 에너지원 수급이 불안정해진 일부 회원국들에는 당분간 석탄 등의 사용을 용인해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석탄은 가장 탄소 집약적인 연료다. 원전의 경우 탄소배출량은 적지만 핵 폐기물 때문에 환경론자들이 반대하는 에너지원이다. EU집행위원회는 향후 5년에서 10년사이에는 당초 목표치보다 5% 가량 더 많은 석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고위급 관계자는 "원전도 더 많이 가동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FT에 따르면 앞으로 최대 10년간은 EU 역내에서 석탄과 원자력을 통한 전력 생산량이 연간 각각 100TWh, 44TWh에 달할 예정이다. 프란스 티머만스 EU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은 리파워EU와 EU그린딜이 양립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대답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