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이 정도일 줄은…" 주주와 소통 나선 동원그룹

입력 2022-05-18 17:48
수정 2022-05-19 01:26
동원그룹이 상장사인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동원엔터프라이즈·동원산업 합병 계획을 변경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과 김남정 부회장의 지배력이 당초 계획보다 축소되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합병비율 조정을 전격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합병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참고 사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동원산업은 최근 동원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에 반대 목소리를 낸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단체, 시민단체를 잇달아 방문했다. 동원산업 임직원들은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경제개혁연대,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의 관계자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합병 필요성에 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기관투자가는 “동원그룹은 시장과 소통을 잘 하지 않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합병 논란에 휩싸인 이후 적극적으로 주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변화를 보였다”고 했다.

그동안 동원그룹은 기업설명회(IR)나 대관 업무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기업이 묵묵하게 본업에 집중해 일자리를 만들고 실적을 내면 시장에서 인정해줄 것’이란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그룹 내 이런 정서로 인해 비상장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상장사인 동원산업의 합병비율을 지난달 7일 발표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들이 그간 통상적으로 주식 시가를 가치 산정 기준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게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소액주주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확연히 커진 실상을 간과한 점이다. 특히 동원산업의 경우 다른 상장사 합병과 달리 순자산가치가 주가보다 훨씬 크다. 동원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합병 결정 당시 0.5배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동원그룹의 합병비율 적정성을 두고 소액주주 사이에선 ‘소액주주 패싱’ 논란에 상법 위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급기야 소액주주 중심으로 불매운동 조짐이 일어나고, 국회에선 ‘동원산업 방지법’까지 발의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동원그룹은 동원산업의 합병가액을 기준시가가 아니라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2020년 이테크건설·군장에너지와 삼자 합병을 추진하던 삼광글라스도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의 반대에 부딪혀 합병비율을 조정한 적이 있다. 당시 시가로 기업가치를 평가했던 삼광글라스는 합병가액을 순자산 기준으로 변경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변호사)은 “회사가 순자산가치로 합병비율을 조정한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연결재무제표가 아니라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순자산가치를 책정한 점,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합병가액에 연계하지 않은 점 등은 아쉽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