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8일 11:4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 법상 직원을 해고하는 건 쉽지 않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유효한데, 대법원은 이를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가 있거나 부득이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로 좁게 보고 있어서다.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근로자는 원직에 복직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소송절차에 돌입한 근로자와 사용자가 다시 정년까지 고용관계를 지속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부당해고구제사건의 상당수는 도중에 쌍방간의 화해-금전적 대가를 지급하고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내용-로 종결된다. 그런데 근로자로서는 해고가 부당함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가급적 많은 보상을 원하기 때문에 쉽사리 화해에 응하지 않고, 사용자로서는 원직복직과 계속고용을 원하지 않기에 승산이 별로 없음을 알면서도 화해가 될 때까지 분쟁을 지속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직복직이라는 구제의 원형(原型)을 고수함으로 인한 비효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부당해고의 금전해결제도
우리나라 법상 부당해고를 금전으로 보상받고 고용관계를 종결시키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가 원직복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에 금전보상명령신청을 제출함으로써 원직복직이 아닌 금전보상으로 구제받는 금전보상제도가 이미 2007년에 도입됐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노동위원회의 심문기일을 통지받기 전까지) 신청서를 제출해야만 하고, 보상액의 수준을 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잘 이용되지 않고 있다. 근로자로서는 원직복직의 판정을 받는 편이 추후 화해금액 결정의 레버리지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외국의 경우 좀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금전보상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영국은 부당해고의 구제조치로서 원직복직, 재고용, 보상금의 지급을 정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보상금의 지급을 명하는 케이스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보상금의 산정방식에 관해서는 연령, 주급, 근속연수에 따라 정해지는 '기초재정액[=근속년수x주급(상한544파운드)x0.5~1.5(연령구간을 셋으로 구분하여 합산)]'에, 해고로 인한 손실 중 사용자 행위에 기인한다고 인정되는 액수를 보상하는 '보상재정액(상한액 주급52주분 및 89,493파운드)'을 가산한다.
독일의 경우 보상금을 지급해 해고 분쟁을 종결짓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나(상한액은 연령과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12개월분~18개월분), 실제 이용률은 저조하고 다만 이러한 제도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재판상 화해에 의해 해결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부당해고보상금을 지급함으로써 해고 분쟁을 종결짓는 것이 원칙이다. 부당해고보상금은 손해배상으로서의 성격과 사용자에 대한 민사적 제재로서의 성질을 겸유하고 있으며, 근로자의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상한액과 하한액이 정해져 있다(예를들어 근속연수 10년의 경우 하한은 급여 3개월분, 상한은 10개월분). 이에 더하여 해고의 당부에 관계 없이 일정 수준의 법정해고보상금도 지급해야 한다.
일본의 금전구제제도 관련 보고서
지난 4월 4일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의 '해고무효시의 금전구제제도에 관한 법기술적 논점에 관한 검토회'에서는 2018년 6월 이후 17회에 걸친 논의를 종합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만일 일본이 부당해고의 금전구제제도를 도입할 경우를 대비해 법기술적인 제도의 구조와 구체적 제도 내용의 방향성에 관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사건을 다루지 않고 법원에서 노동심판과 민사재판으로 다루기 때문에, 부당해고시 금전구제제도의 도입은 단순한 행정명령이 아닌 민사법상 실체적 청구권의 변경(추가)을 의미한다.
그 구체적 내용을 조금만 보면, 근로자의 선택지를 늘린다는 취지에서 근로자에게만 신청권을 부여하면서, 법적 구성으로서는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금전보상청구권을 행사하면 근로자에게 '노동계약해소금채권'이 발생함과 아울러 사용자가 당해 노동계약해소금채권을 실제로 지급하면 고용계약이 종료되는 '조건부 근로계약종료효'가 생긴다는 것이다. 다만, 노동계약해소금채권이 발생하는 시기는 근로자가 행사하는 즉시 발생한다고 구성할 수도 있고(형성권 구성), 판결이 확정된 때에 발생한다고 구성할 수도 있다(형성판결 구성). 여기서 노동계약해소금채권은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의 지위를 해소하는 대가'로서의 성격을 갖고, 그 구체적인 금액의 산정공식은 당해 근로자의 급여액, 근속연수, 연령, 합리적인 재취업기간 등을 고려하게 된다. 상한액·하한액을 정할 것인지, 집단적 노사합의에 의한 별도의 정함을 어느 범위에서 허용할 것인지 등도 검토해서 정책적으로 결정하되, 근로자의 예견가능성을 높이고 분쟁의 일회적 해결을 촉진한다는 정책목표를 달성하도록 설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그밖에도 여러 세부적인 법적 쟁점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법정분쟁 끝에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고도 실제로 원직에 복귀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일본의 경우 3~4할에 달한다는 통계조사 결과가 있다), 위와 같은 금전구제제도가 우리와 해고 법제가 유사한 일본에서 도입·시행되어 활발히 이용된다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서로 간에 참고하면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