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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사진)이 16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늦게 대응했다고 비판했다. 전직 Fed 의장이 현직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언제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정하는 것은 복잡하다”면서도 “문제는 왜 Fed가 인플레이션 대응을 늦게 했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플레이션 대응을 늦게 한 것은 실수였다”며 “그들도 실수였다는 점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Fed 인사들은 긴축 정책을 쓰기 전에 ‘포워드 가이던스(향후 지침)’를 주면서 충분히 시장에 알렸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이 가이던스가 Fed의 인플레이션 대응을 느리게 했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조심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전직 Fed 의장이 후임자를 공개 비판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파월 의장이 시장 충격을 적게 주기 위해 신중하게 인플레이션에 대응했다고 분석했다. 파월 의장은 2013년 테이퍼링(채권매입 축소)으로 시장이 크게 흔들릴 당시 Fed 이사였다. 당시 버냉키 의장이 테이퍼링 계획을 언급하자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신흥국 통화와 주가가 급락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봤던 파월 의장은 시장 혼란을 줄이려면 가능한 한 많은 사전 언질을 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버냉키 전 의장의 설명이다.
다만 버냉키 전 의장은 현 상황이 1970~1980년대처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악화할 것으론 보진 않았다. 그는 “Fed의 긴축 정책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며 “집값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그 영향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1970년대에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현 상황은 더 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버냉키 전 의장은 미국이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낙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경제는 둔화할 것”이라며 “내년이나 후년에는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을 텐데 그게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