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모셔가기' 경쟁 '치열'…회계법인 신입 채용 올해 '최대' 규모

입력 2022-05-17 15:40
수정 2022-05-18 11:57
이 기사는 05월 17일 15: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계사를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도 아니에요. 15년 경력자가 중견회계법인에서 연봉 2억 이상 받은 경우도 봤어요."(IB업계 관계자)

회계사 '구인난'이 심해지면서 회계사 연봉도, 신입 회계사 채용 숫자도 최고치를 찍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신입 공개채용을 진행키로 했다. 2018년 11월 신(新)외부감사법 시행 후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으로 회계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난 데다 기업들이 회계사 채용을 늘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진 까닭이다.

특히 기업과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관련 스타트업이나 벤처캐피털(VC)은 물론 대기업과 금융업체, 투자은행(IB) 등 전 분야에 걸쳐 회계사들을 향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삼일PwC·KPMG삼정·EY한영·딜로이트안진 등 '빅4' 회계법인들은 "기업으로 이직했다가 돌아오는 경력직도 와주기만 하면 대환영"이라며 '외도'했던 회계사들을 더 높은 연봉에 '상시 채용'하고 있다. MZ세대 신입 회계사도 '모셔오기'KPMG삼정은 올해 '최대 규모의 신입 공채'를 준비 중이다. 2019년 433명이나 뽑았던 이 회사는 2020년 271명, 지난해 390명 등 '7년 연속 신입 회계사 최다 고용' 기록을 갖고 있다. 올해도 390여명을 신규 채용키로 했다. 자율적인 업무 환경을 위한 유연근로제, 스마트 오피스, 복장 자율화 등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복지 정책을 강조할 계획이다.

삼일도 2020년 220여명, 지난해 385명의 신입 회계사를 채용한 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뽑기로 했다. 4대 회계법인 중 가장 보수가 높고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PwC 지사에 파견 근무 기회가 있다는 걸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일에 등록된 회계사 수가 지난해 4월말 기준 2253명, 수습 회계사가 197명이었는데 올해 4월말엔 등록 회계사 2261명, 수습 382명으로 1년 만에 187명 늘어났다. 그런데도 더 많은 인원을 채용하려는 것이다.

EY한영이 올해 감사부문에서만 250여명을, 딜로이트안진이 250여명을 채용한다는 걸 감안하면 올해 '빅4' 회계법인에서만 1300명이 넘는 회계사를 뽑을 것으로 보인다.

신입 회계사 채용을 위한 회계법인들의 'MZ 지원책' 경쟁도 치열하다. 이제 막 회계사 시험을 통과한 2030세대의 특성을 반영해 유연근로제, 자기계발 지원책, 리프레시 제도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삼일은 입사 후 개인 커리어 계획에 따라 감사/세무/M&A 등 전문부서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감사로 바쁜 시기가 지난 뒤엔 추가로 일했던 시간만큼 쉴 수 있는 리프레시 제도도 도입했다.

안진도 MZ세대를 겨냥해 여러 사업본부를 선택해 체험할 수 있는 '커리어 여정' 지원, 대표이사와의 라이브채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엔 거점별 위성오피스 개소도 준비 중이다. 삼정 역시 입사 후 글로벌 엘리트 프로그램에 참여해 3년 동안 스스로 러닝 트랙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MZ 겨냥 복지책을 마련해뒀다. 유연근로제 시행, 스마트 오피스 구축, 반팔셔츠 같은 편안한 복장 도입 등 젊은층이 선호할 만한 시스템을 갖췄다.

KPMG삼정 관계자는 "삼정은 MZ세대가 가장 많이 입사한 회계법인으로, 전체 회계사들의 평균 연령이 33세일 정도로 젊다"며 "개인의 적성과 희망 업무에 따라 분야와 산업군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일반 기업·IB 업계도 '러브콜' 경쟁경력자들도 '러브콜'의 대상이다. A보험사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갔던 15년 경력의 한 회계사는 최근 중견회계법인에 연봉 2억원+알파를 조건으로 입사했다. B카드사에서 근무하던 5년차 회계사는 C회계법인에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고 들어갔다.

C회계법인 관계자는 "특히 금융 부문에서 일했던 회계사들은 전문성을 내세워 더 높은 연봉을 요구한다"며 "기업으로 이직해도 언제든 다시 회계법인에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퇴사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중견법인들도 경쟁에 가세했다. 삼덕·대주·신한 등 중견법인들은 지난해부터 '빅4' 수준의 연봉과 추가 성과급을 경력직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력직을 모두 4대법인에 뺏길 위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의 경우 CFO 일을 맡기기에 제격인 회계사를 선호하고 있다. 또 내부회계감사 등 관련업무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몸값을 주더라도 모셔오는 것이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사모펀드(PEF) 운용사, 투자은행(IB) 등도 경쟁사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회계사는 기업가치 평가(밸류에이션) 업무에도 적격인 직업"이라며 "PEF들이 회계사를 더 많이 채용하려는 이유"라고 말했다. 표준감사시간제로 필요 인원 '급증'회계사 인력난이 가중된 핵심 원인은 신외감법 도입 때문이다. 표준감사시간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이 시행되면서 회계 업무 양이 늘었다. 표준감사시간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을 감사에 투입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기업 규모가 5조~10조원인 제조업체는 기본 3770시간을 기준으로 하되, 상장 여부와 자회사 수 등 세분화된 기준에 따라 감사 시간이 추가되는 식이다. 여기에 주52시간제까지 겹쳐 회계업무에 투입해야 할 인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삼성전자의 감사에 투입된 회계사 숫자는 2017년(감사실시연도 기준) 114명에서 2019년 126명, 지난해엔 175명으로 크게 늘고 있다. 네이버는 2017년 57명에서 지난해 83명으로,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28명에서 80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회계사 수도 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등록된 회계사 수는 2017년 1만9956명에서 2019년 2만1468명, 지난해 2만3875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3월말 기준 2만3938명이다.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기업들의 감사에 필요한 표준감사시간이 늘어나고 1인당 근로시간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필요 인원이 늘어난 것"이라며 "여기에 기업들의 수요까지 더해져 회계사 직군을 선호하는 트렌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