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재건축단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이 타워크레인 해체를 시작했다. 이로써 최소 6개월 이상의 공사 기간 연장이 불가피해졌다. 공사 중단 후 한달이 지났음에도 조합과의 협상이 진전되지 않자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사업지 일부 구역에선 이날부터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시공단 관계자는 "타워크레인 대여가 이달 말 만료되는 만큼 일부 구역에서 미리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공단은 공사 중단 사태 장기화됨에 따라 다음 달부터 타워크레인을 전면 해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둔촌주공 사업장엔 57대의 타워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타워크레인은 한번 해체하면 재설치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리고 수급 사정에 따라선 기한을 장담할 수 없다. 지난달 15일부터 공사 중단에 들어간 시공단이 한달이 지났음에도 타워크레인 해체는 미뤘던 이유다.
시공단과 조합 간 협상이 한달 이상 지지부진하자 시공단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시공단에 따르면 공사중단 기간 중 발생하는 비용은 타워크레인, 호이스트 등 장비 대여료와 유치권 관리 용역비, 직원, 가설전기 등 월 150억~200억원 가량이 쓰인다.
정비업계에선 타워크레인 철수 자체를 시공단이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9개월 이상 연기된 공사 기간이 향후 기약 없이 늘어날 수 있음에도 해체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현 조합과 사실상 결별하는 수순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둔촌주공 현장은 지난달 15일 전면 중단에 들어간 이후 52% 공정에서 멈춘 채 방치돼 있다. 한달 이상이 흘렀지만 조합과 시공단은 전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협상의 핵심은 증액계약서 인정 여부다. 2020년 6월 전임 조합 집행부와 시공단은 설계 변경 등에 따라 공사비를 기존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약 5600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현 조합 집행부는 절차상 이 증액계약서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때 조합이 증액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도 일었다. 하지만 조합은 “‘증액’과 ‘기존 증액계약서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인 만큼 기존 증액계약서는 무효”라는 입장을 거듭 내세우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2020년 맺은 증액계약서는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조합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많다”며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면서 재검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공단은 조합이 증액계약서를 인정하지 못하면 공사를 재개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공단 관계자는 “그동안 기존 증액계약서를 근거로 공정률 52%까지 공사를 했는데 이제 와서 그 계약서를 인정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사를 재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사 계약 변경이 조합 총회의 의결을 거쳤고, 관할 구청의 인가까지 받았던 만큼 다시 계약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둔촌주공은 당초 이달 일반 분양에 들어가 내년 8월 입주할 계획이었다. 이미 9개월가량 공사기간이 늘어난 상황에서 타워크레인 철거까지 이뤄지면서 이젠 입주시기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됐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를 짓는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이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