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주의' 네 번 강조한 윤 대통령 "英 처칠 전시내각처럼 여야 협치해야"

입력 2022-05-16 17:38
수정 2022-05-17 03:15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 과제를 화두로 꺼냈다. 한국의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이들 분야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의견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왔다.

3대 분야 개혁은 입법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회피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들 분야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초당적 협력을 수차례 강조하며 3대 개혁 추진을 제안한 것 자체가 여당은 물론 야당에 압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입법 성과가 미진할 경우에 대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도 있다. “영국 전시내각처럼 협치해야”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취임 엿새 만에 이뤄졌다. 역대 정부 중 가장 빠르다. 연설문에는 ‘초당적 협력’이란 문구가 세 번, ‘의회주의’는 네 번 나온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수당 출신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노동당 출신 부총리 클레멘트 애틀리 간의 협력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해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나라를 구했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에 비유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사회와 제도 개혁을 위해서 야당의 협조를 꼭 구해야 하는 ‘여소야대’ 정치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강조하는 데 연설의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배경이다. 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강 대 강’ 국면으로 대치했던 새 정부 출범 직후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윤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3대 개혁 과제’는 거대 야당과 국정 현안을 논의하면서도 “마냥 수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연금·노동·교육 등 3대 분야 개혁과 관련해선 윤 대통령도 선거 당시 과감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새 정부 출범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한 게 전부다. 인수위는 국민연금 보험료와 수급액을 다시 조정하는 민감한 사안은 여야 정치권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기구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국회에 공을 넘긴 것” 분석도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을 고려하면 노동과 교육 개혁도 연금 개혁과 비슷한 방향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 중 노동 과제인 △중대재해법 등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정비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성 확보 등은 연금 개혁처럼 사회적 합의가 어렵고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대입제도 개편, 대학 규제 개혁, 유치원과 보육원 통합 등 교육 공약도 이해 관계에 따라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민감한 사안들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3대 개혁 추진을 제안하면서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공을 국회로 넘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면서도 개혁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입법권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하려 한 것”이라며 “몸은 낮추면서 국회에 협치를 요청하는 게 오히려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노력에도 실타래처럼 얽힌 여야 대치 정국이 풀릴지는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우선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문제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두고도 여야가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6·1 지방선거 전까지 대치 정국이 풀리기 어려운 만큼 돌파구는 선거 이후에 마련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