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美의 절반인 까닭

입력 2022-05-16 17:24
수정 2022-05-17 01:35
코로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확대한 유동성과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이 더해지며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물가가 크게 치솟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이 8.5%, 유로존은 7.5%인 데 비해 한국은 4.1%로 비교적 선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서 물건을 사보면 물가 상승률이 과연 4%에 불과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특히 지난 2년간 급등한 집값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공식 물가 통계로 자주 사용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가계의 소비지출 중에서 구입 비중이 큰 460여 개 상품 및 서비스 품목으로 구성된 장바구니를 기준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내가 구입한 물건이 공식 지수의 장바구니와 다르면 체감하는 물가는 공식 물가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미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는 물건 가격이 덜 오른 것이 아니라 두 나라의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방식의 차이와 가격정책 때문이다.

첫째, 미국과 한국의 물가지수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비 비중이 9.8%인 데 비해 미국은 32%에 이른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주거비 비중이 작은 이유는 자가 주거비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가 주거비를 물가지수에 포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찬반 논리가 공존한다. 자가 주거비를 소비자 물가지수에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 따르면, 내가 소유하고 실제로 사는 집의 가격 상승은 자산 가치의 상승이니 생활비 인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현재 보유한 다른 내구재(자동차, 세탁기 등)의 가격 상승도 생활비 상승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자가 주거비를 물가지수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어,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고 꾸준히 예금을 모아온 가구나 지금 전세로 살지만 내 집을 마련하려고 현금을 모아둔 가구를 생각해 보자. 이들 가계 입장에서는 집값 상승으로 인해 더 큰 집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거나 내 집을 마련할 기회가 좌절된다면, 집값 상승이 실제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치고 후생을 감소시킨 것이다. 따라서 자가 주거비가 물가지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 주거비 비중을 포함하고 집값 및 전·월세 상승을 반영해 물가상승률을 다시 계산하면 공식 지표 대비 인플레이션율이 최대 2%포인트까지 추가 상승할 수 있다.

둘째, 공식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사용하는 전·월세 가격의 변동이 실제 시장의 가격 변동보다 작다는 지적이 있다. 전·월세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통계로 경제분석에 자주 사용되는 KB국민은행·한국부동산원의 전셋값 지수를 사용하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추가로 약 0.3%포인트 더 올라간다. 주거비와 관련된 위 두 가지 요인을 반영한 물가상승률은 공식 물가상승률보다 약 2.3%포인트 이상 높아져 6%대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한국은 전기료와 도시가스비 같은 공공요금을 사실상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전기료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고 기업의 생산원가를 낮춰 물가 상승을 억제한다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이를 공급하는 공공기관들의 적자를 유발한다. 이러한 공공부문 적자는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국민이 부담할 세금이다. 공공기관(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영업손실을 보전할 만큼 전기료와 도시가스 요금을 바로 인상한다는 가상의 시나리오 아래서 물가지수를 다시 계산해보면 물가상승률은 추가로 1%포인트가량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세 요인을 다 고려해서 계산한 가상의 잠재적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공식통계보다 훨씬 높은 7%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선방한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위협은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가지수는 정부의 정책 수립과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도 준거가 되는 중요한 지표인 만큼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하도록 지속해서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