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NH투자증권레이디스챔피언십(총상금 8억원) 최종 라운드가 열린 15일 경기 용인 수원CC. 지난해 챔피언 박민지(24)가 1번홀 티박스에 오르자 주변을 둘러싼 ‘구름 갤러리’가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한껏 상기된 박민지가 티샷 자세를 잡자 티박스 주변엔 정적이 감돌았다. 박수 소리와 환호성은 박민지의 드라이버샷이 직선 방향으로 쭉 뻗어나간 뒤에야 돌아왔다. “굿 샷~”, “역시 박민지!”란 응원을 등에 업은 그는 첫 홀 버디를 잡은 뒤 갤러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2년여 만에 돌아온 갤러리들이 대회 풍경은 물론 경기 결과마저 바꾸고 있다. 응원과 환호에 힘입어 경기력이 살아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부담스러운 선수도 있어서다. “우승을 위해 넘어서야 할 산이 2년여 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란 얘기가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유다. “경기력 향상에 도움 된다”
15일 KLPGA에 따르면 이날 막을 내린 NH투자증권레이디스챔피언십을 찾은 갤러리는 모두 2만386명으로 집계됐다. 대회 첫날 2352명, 둘째 날 1만1362명 등 대회 기간 총 3만4100명이 입장했다. 2015년 수원CC로 개최 장소를 옮긴 이후 이 대회 역대 최다 갤러리 기록을 새로 썼다.
대다수 선수는 갤러리가 돌아오자 “기분 좋은 긴장감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골프가 프로 스포츠인 이유도 관람객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선수는 지난해까지 무관중으로 대회가 진행되자 “연습 라운드와 차이를 모르겠다” “흥이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런 만큼 대다수 선수는 갤러리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지난주 교촌허니레이디스오픈에서 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조아연(22)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년간 갤러리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갤러리들의 호응에 따라 못 쳤을 때는 위로가 되고, 잘 쳤을 때는 힘을 받아 흐름을 잘 타게 된다. 나는 갤러리가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다. 우승의 원동력을 갤러리에게서 찾은 셈이다. “갤러리 없는 작년이 좋았다”하지만 모든 선수가 갤러리에게서 힘을 얻는 것은 아니다. 팬층이 두텁지 않은 선수들은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골프업계에서는 지난해 유독 깜짝 우승자가 많았던 이유를 ‘무관중 경기’에서 찾기도 한다. 팬층이 두텁지 않은 선수들이 인기 선수 옆에서 덜 주눅 들고 경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앞 홀에 갤러리가 구름같이 몰려 있다가 떠나버리거나 같은 조에서 경기하는 상대 선수에게만 응원이 집중되면 선수들은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선수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나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갤러리는 베테랑 선수에게 ‘악재’가 되기도 한다. 김비오(32)는 2019년 중요한 샷을 앞두고 갤러리 쪽에서 터져 나온 카메라 셔터 소리에 집중력이 흔들렸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쪽으로 손가락 욕설을 날렸다가 협회로부터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지난해 6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브라이슨 디섐보(29)는 일부 갤러리가 ‘브룩시’(디섐보의 앙숙인 브룩스 켑카의 애칭)라고 외치며 경기를 방해하자 운영위 측에 퇴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돌아온 갤러리’에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는 선수들과 달리 주최 측과 골프장은 ‘대환영’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KLPGA 관계자는 “갤러리 덕분에 대회 분위기가 훨씬 달아올랐다”고 말했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SNS가 일상인 20~30대 갤러리가 늘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