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의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결행 이후 국내 금융시장 혼란이 가속화하고 있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심상찮다. 미국 금리 인상기에 남미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추락하고 경제위기를 겪은 예전 사례가 반복될까 두렵다.
현재로선 환율 상승을 막기가 버거운 상황이다. 원화 약세를 촉발한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곡물가 급등으로 올 들어 무역적자가 98억6000만달러(10일 현재)나 쌓인 점도 원화에 부담을 주고 있다. 국내 사정도 환율시장에 비우호적이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 투자를 늘리는 국민연금, 규제·노조를 피해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로부터 달러 수요가 밀려들고 있다.
원화 약세를 참지 못한 외국인 자금 유출 동향도 심상찮다. 외국인 주식 매도는 이달에만 2조원에 육박한다. 꾸준했던 채권 매수세도 연초의 15% 수준으로 급감했다. 3~4월 두 달간 주식·채권시장에서 탈출한 외국인 자금만 72억달러에 달한다.
위기에 둔감했던 전 정부와 달리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거시금융점검회의’를 개최한 점은 다행스럽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 한국은행 총재가 2년 만에 참석하고 민간 전문가들을 불러 현장 목소리를 청취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금융점검회의 하루 전에 역대 최대 규모인 ‘59조원+α’ 추경안을 발표한 것은 유감이다. 물가상승률이 5%에 육박하는 와중에 막대한 추경이 풀리면 원화가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총력전을 펼쳐도 금융시장 혼란을 진정시키기 어려운 딜레마적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자본 유출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증가’라는 부작용을 생각하면 과감한 행보가 쉽지 않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연 20조원 가까운 이자가 늘어나는 구조다.
진퇴양난이지만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환율과 물가를 동시에 안정시킬 수 있는 장단기 대책을 정교하게 마련하고 각 부문의 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데 정책 역량을 쏟아야 한다. 또 세계 소비가 정점을 찍었다는 관측이 조금씩 나오는 만큼 하반기에 국내외 경기가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도 조금씩 가시화하고 있다. 모두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