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검은 목요일’로 몰아넣은 한국산 코인 테라와 루나의 폭락 사태는 예고된 참사나 다름없다. 이들 암호화폐가 안정성 높은 ‘스테이블(stable) 코인’을 표방했지만 이면의 구조는 불안정(unstable)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 등에 가치를 고정해 가격 변동성이 최소화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테라 역시 코인 1개당 가치가 1달러에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가격 변동성이 극심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안정성을 내세운 스테이블 코인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지난해 말 기준 약 1300억달러(약 167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문제는 안정성을 담보하는 방식이었다. 상당수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나 금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는 것과 달리 테라는 자매 코인(루나)을 발행해 가치를 떠받치도록 설계됐다. 소위 ‘코인 돌려막기’ 구조였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를 매각하자 루나 가격도 함께 떨어졌고, 서로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코인런(대규모 자금 인출)’ 사태로 이어졌다.
개별 코인의 폭락 사태가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패닉을 몰고 온 것은 스테이블 코인 구조의 ‘연결성’ 탓이다. 추락하는 코인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발행사가 예치금 형태로 보유한 비트코인 등을 대거 처분할 것이란 우려에 전 세계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이 일제히 급락했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의 몰락은 암호화폐 시장 전체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최근 각 코인 발행사가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스테이블 코인이 시장의 뇌관이 될 것이란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의회가 이번 폭락 사태와 관련해 “아주 복잡한 (암호화폐) 상품은 국민이 힘들게 번 돈을 위험에 빠트린다”며 감독당국 차원의 규제를 촉구한 이유다.
이번 사태는 암호화폐 시장의 투기적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폰지 사기’ 논란이 불거진 코인에 투자금이 대거 몰린 배경에는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피어나는 한탕주의 풍조가 자리 잡고 있다. 코인을 찍어낸 발행사는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다. 일확천금의 꿈에 젖어 목돈을 투자했다가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는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