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뒷모습에 담긴 일상의 행복…데스 브로피 'Lost ball'

입력 2022-05-13 17:33
수정 2022-05-14 00:11

꽉 움켜쥔 골프채로 중심을 잡고 엎드린 두 남녀. 둘 다 러프에 공을 떨어뜨린 건지, 짝궁의 공을 같이 찾아주기 위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러프 안을 두리번거린다. 이 그림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단지 색감 때문만은 아니다. 똑 닮은 자세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시선 때문이다. 그림 속 두 인물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 우린 기꺼이 상상할 수 있다.

‘Lost ball’은 영국의 할아버지 화가 데스 브로피가 그린 골프 연작 중 하나다. 브로피는 40대 초반이 돼서야 은퇴한 화가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며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유년 시절을 보낸 바닷가 그림을 그리다가 점차 동네 풍경으로 소재를 옮겼다. 골프 연작 외에도 ‘남자들의 수다’ ‘내가 왕년에’ ‘신문 봤어!’ ‘룰루랄라’ ‘빗길을 둘이서’ ‘우산 셋이 나란히’ 등 누구나 일상에서 한번쯤 봤거나 해봤을 일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주로 담았다. 골프장에서의 유머러스한 장면들, 길을 걷거나 한가로이 쉬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게 분명하다. 그림 속 인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로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고민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은 없다. 친구, 연인, 강아지와 보내는 사소한 일상의 행복한 순간만 포착한다.

브로피는 왜 일상의 소중함을 이토록 열망했을까. 그는 16세 때 영국 왕립 공군에 입대해 12년간 아프리카 중북부와 동남아시아, 인도양 몰디브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귀국 후에는 22년간 영국 셰필드 경찰서에서 경찰로 일했다. 청년기에는 가족과 고향이 그리웠을 테고, 중장년기에는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그의 그림에는 유독 뒷모습이 많다. 정지된 뒷모습이지만, 박자감과 리듬감이 빼어나다. 뒤뚱뒤뚱, 퐁당퐁당 빗물을 피해 걷는 이들의 뒷모습은 ‘노년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란 것을 보여준다. 그는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묻는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쁜 사람이 당신에게 있는지를. 기꺼이 엎드려 공을 찾아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지를.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