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보험업계의 숙원으로 꼽혀온 ‘실손보험 간편 청구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데다 제도 도입을 뒷받침하는 법안이 추가 발의되는 등 시행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4월 작성한 국정과제 세부 이행계획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 이행을 위한 국민 체감 프로젝트의 하나로 실손보험 간편 청구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병원 창구에서 일일이 서류를 떼야 하는 소비자 불편을 원천적으로 없애겠다는 취지다.
현재 실손 보험금을 받으려면 소비자가 영수증과 진단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등을 떼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몇몇 보험사가 대형 병원 및 핀테크와 제휴해 모바일 앱으로 서류를 전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전국 수많은 병원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간편 청구제는 병원이 서류를 전산을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공하면 심사평가원이 보험사로 전달하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 제도 도입을 권고했지만 13년째 표류하고 있다. 국회에는 제도 도입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5건 발의돼 있다. 그동안 반대해왔던 배진교 정의당 의원도 최근 새 법안을 제출했다.
보험업계는 전산을 통한 실손보험 청구로 효율성이 높아지고 소비자의 편익도 커질 것이라며 간편 청구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실손보험 적자의 주범으로 꼽히는 과잉 진료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복잡한 절차 탓에 보험금 지급을 포기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지난해 코리아리서치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47.2%가 ‘청구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병원에서 서류를 뗄 시간이 없다’ ‘보험금을 타 봤자 소액이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하면 진료기록이 유출되고 행정 비용도 커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는 간편 청구제가 현재 병원들이 자체 책정하는 비급여 항목 가격을 심사평가원이 통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와 금융소비자단체는 전산화로 비용이 줄어들고 의료기록을 악용하는 것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정부 부처의 입장은 엇갈린다. 금융위원회는 “국민 편의를 위해서라도 청구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기술 도입은 필요하지만 의료계와 보험업계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