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장으로 세상의 많은 청춘들에게 위안을 줬던 독일 문호 헤르만 헤세가 올해 사후 60주년을 맞았다. 출판가에서도 그에 관한 책을 여럿 내놓고 있다.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헤르만 헤세 지음, 연암서가)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조언을 담았다. 헤세는 엄청난 다독가였다. 15세에 퇴학당한 뒤 혼자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작가로 성공하기 전까지는 서점 점원으로 일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었고, 어떤 책들은 수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나는 어떤 책의 가치를 따질 때 그 책의 유명도나 인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어떤 책을 처음 우연히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얼마 뒤에 잊지 말고 꼭 다시 읽어보라”며 재독을 권했다. 하지만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것에는 반대했다. “인생은 짧다. 저승에서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고 해로운 일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들》(헤르만 헤세 지음, 마음산책)은 헤세가 쓴 책과 편지에서 음미할 만한 문장을 뽑아 자연, 여행, 책, 지혜, 사랑, 내면 등 주제별로 분류했다. 삶에 대한 그의 통찰이 드러나는 문장들이다.
헤세는 도시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세상과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30세이던 1907년에는 호수가 보이는 시골 마을 가이엔호펜에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자연을 노래한 문장이 많은 이유다. 그는 “나무는 내게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설교자”라고 했고 “나무들에 귀 기울이기를 배운 자는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헤세가 천착한 주제는 내면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요양원을 드나들었고 불안에 시달렸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항상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에 괴로워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의 자전적 소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 나오는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자신이 부수고 뛰쳐나온 그 세계로 되돌아갈 뿐이었다”는 그의 이런 태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헤르만 헤세 지음, 북하우스)는 음악에 관한 헤세의 생각을 모았다. 그의 소설에는 음악이 자주 등장하는데, 실제 그는 음악 애호가였다. 그는 음악에 대해 “미적으로 지각 가능한 순수한 현재이자, 찰나의 순간이 과거 및 미래와 합일을 이루는 마법”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편지에서는 “음악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경탄을 바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했다.
헤세의 음악적 취향은 확고했다. 바그너, 말러처럼 도취적인 표현이나 육중한 악기 편성이 드러난 음악보다 바흐, 모차르트처럼 삶을 긍정하는 가뿐하고도 명랑한 선율을 좋아했다. “제가 마음 깊이 느끼는 바로 그것을 불가사의하게 표현하는 쇼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있는 피아노 음악은 베토벤뿐일 것 같습니다”라며 쇼팽과 베토벤의 피아노곡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