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2일 1290원에 육박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과 중국 경제 하강 우려 등 대외 악재가 겹치면서다. 특히 중국발(發) 위기로 한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환율 급등)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환율 어디까지 오르나원·달러 환율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1291원50전까지 뛰었다. 원·달러 환율이 1290원대를 넘은 건 코로나19 공포가 퍼지기 시작한 2020년 3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환율은 전날보다 7원20전 급등한 1282원50전에 거래를 시작했다. 장 마감 전인 오후 3시께 1291원50전을 기록하는 등 내리 오름세를 보였다. 이후 30분간 하락 거래되면서 가까스로 1288원60전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론 약 13년 만의 최고였다.
환율이 급등한 것은 간밤에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8.3%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김승혁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폭은 3월(8.5%)에 비해 둔화했지만, 시장에서 예상한 8.1%를 웃돌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며 “미 중앙은행(Fed)이 긴축 속도를 제어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에 힘이 실리면서 환율이 급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원화가치 하락 심해져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 가치 하락)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월 3일 1193원10전으로 시작한 이후 90원 이상 올랐다. 지난 한 달 사이에만 50원 넘게 올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지난 10일 기준으로 5.0% 하락했다. 위안화(-5.7%)보다는 절하율이 낮았다. 하지만 신흥국 통화의 절하율(-3.8%)보다는 절하폭이 더 컸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원화 절하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예컨대 4월 달러 대비 유로화(10일 기준)는 2월보다 3.0% 빠졌지만, 원화 가치는 2.5% 내렸다. 이를 근거로 통화 당국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절하) 속도가 급격하게 빠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원화는) 다른 이머징 마켓이나 유로화, 다른 기타 화폐에 비해 크게 절하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사이 ‘중국 쇼크’가 부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원화 가치가 지난 한 달여간 5.0% 떨어지는 사이 유로화는 4.9% 내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국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며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선 다른 국가보다 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율 대응 시급하다”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것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월 13일(1315원)이 마지막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와 통화 당국의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선제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달러 환율이 지금까지 그나마 선방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 서서히 기준금리를 올려왔기 때문”이라며 “급등하는 환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