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에서 미술공부를 하면 실제 그림도 잘 그릴까. 소위 작가의 ‘스펙’과 화단의 평가는 얼마나 일치할까.
가방끈이 길다고 작품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임상빈 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46)는 화려한 스펙만큼이나 후한 평가를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서양화 전공)를 거쳐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예일대 대학원에 진학해 회화와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땄다. 박사학위는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미술·미술교육 전공으로 받았다.
‘엘리트 미술인’은 그림보다 사진에 먼저 빠져들었다. 2001년부터 국내외에서 열린 ‘임상빈 개인전’의 메인 무대에 오른 것은 언제나 사진이었다. 그랬던 그가 전시장의 중앙에 그림을 걸었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화획(畵劃)’에 그림 22점을 내건 것. 사진은 6점뿐이다. 임 교수는 “사진에 비해 모자랐던 그림 실력이 올라온 것 같아 사진전 대신 미술전을 연 것”이라고 했다. ○‘그림 같은 사진’ 찍던 작가
임 교수가 사진에 빠진 것은 1999년이다. 각종 디지털 장비와 초고속인터넷이 세기말의 혼란과 함께 그를 찾았다.
“그 전까지 제 인생은 아날로그였습니다. 그저 그림만 죽어라 팠죠.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바뀌고 있더라고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길로 제 작품에 디지털을 입히기 시작했죠.”
임 교수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스캐너를 통해 컴퓨터 파일로 옮긴 뒤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합치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반복하자 사실적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이미지가 나왔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표작은 톈안먼, 첨성대, 경회루 등 전통 건축물의 키를 비현실적으로 키운 작품들이다. 임 교수는 “디지털 이미지에 붓 터치와 같은 아날로그 기법을 녹였다”고 했다.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란 단어 들어보셨나요. 다들 고(故) 이어령 선생이 2006년에 만든 신조어로 알더군요. 사실 제가 먼저 썼는데…. 2002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내놓은 작품 이름이 ‘디지로그’였습니다. 디지털이 가져올 변화와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적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 보니 이런 용어까지 생각이 닿더군요. 물론 이어령 선생은 제 작품을 모른 채 별도로 조어(造語)하셨겠지만.”
그는 그렇게 사진 작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많은 사람이 찾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노스캐롤라이나미술관 등도 그의 작품을 사들였다. ○“16년간 갈고닦은 회화 보여줄게요”사진작가로 성공을 거둔 그가 회화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임 교수는 “나는 사진작가나 화가가 아니라 그냥 작가”라고 했다.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가장 어울리는 매체로 표현했을 뿐 사진이나 회화 등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 걸린 화획(Stroke) 연작은 말 그대로 붓의 획과 움직임에 모든 것을 건 작품이다. 2006년부터 이런 주제로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색깔의 아크릴 물감으로 수없이 붓질해 화면을 구성했다. 뚜렷한 형태가 없는 추상화지만, 옆에 걸린 현실적인 분위기의 사진 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임 교수는 “그동안 선보인 사진 작품에 있는 구름에 붓질을 하는 등 예전부터 붓 효과에 주목했다”며 “사진과 그림 작품들이 비슷한 철학과 기법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사진을 하다 보니 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붓의 기운과 강약, 양감, 질감, 다양한 색채 등이 그리웠어요. 사진은 실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이나 내면의 에너지를 표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16년 동안 꾸준히 그려온 덕분인지, 최근 들어 ‘이 정도면 전시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화과 교수지만 이제야 제 회화에 자신을 갖게 됐네요.” 그가 멋쩍게 웃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