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벽 통과하면 따뜻한 자연의 공간“들어가기도 전부터 밖에서 건물 안을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성벽 안에 숨겨진 큰 궁전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연이 펼쳐지는 광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민락로를 따라 걷다 보면 유리가 없는 회색 외벽이 보인다. 굳게 닫힌 철옹성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들어갔지만 웬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광경은 예상과 정반대다.
“도서관 부지를 보니 앞은 도시, 뒤에는 자연 근린공원이더라고요. 자연과 도시가 만나고,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곳인 셈이죠. 서로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듯이 두 영역이 섞이는 모양을 연출했습니다.”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에 자리한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전문 도서관이다.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6565㎡ 규모로 2019년 문을 열었다. 1층에는 미술 전문 정보 서가와 상설 전시실, 2층에는 어린이자료실과 일반 자료실, 3층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교육 공간, 작업 공간이 있다. 도서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했다. 기자가 방문한 평일 오후에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부모, 작은 목소리로 티타임을 즐기는 친구들, 책을 찾아 읽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열린 평면’이다. 시각적 개방감이 탁월하다는 의미다. 공간을 나누기보다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층은 중앙의 원형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각층에서는 자료 열람실, 전시실, 커뮤니티실이 폐쇄된 공간으로 구분돼 있지 않다. 바닥과 카펫의 색상, 도서관 내 가구, 전등 소품 등에도 서로 하나된 느낌을 주기 위해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가구는 완성품 대신 각각 디자인한 것들로 채웠다.
쾌적한 느낌을 주기 위해 곡선을 많이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한정적인 부지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통해 자유롭고 따뜻한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어린 이용객도 많은 만큼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최상층인 3층에서 1층이 바로 보이면 공포감을 줄 수 있어 3층에서는 2층 바닥, 2층에서는 1층 바닥을 볼 수 있도록 곡선을 중첩시켜 안전성을 확보했다. 미술과 문학이 직선보다 곡선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반영됐다. 책을 비운 자리, 사람이 채우다
조 대표는 멋진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자칫하면 모두가 뻣뻣하게 앉아 공부하는 ‘독서실’이 될까봐 우려했어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를 위해 공간을 ‘어떻게 채울까’보다 ‘어떻게 비울까’를 고민했다. “채워진 공간에는 책과 미술품이 있다면 비워진 공간에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채우는 공간은 ‘지속 가능성’을 지니게 됩니다. 공간의 용도를 한정짓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에 대응할 수 있거든요. 그 자리에서 축제도, 음악회도,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죠.”
지역 내 신진 화가들이 지역 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한 공간도 눈에 띄었다. 1층에는 신진 화가를 위한 기획 전시실이 있다. 현재 전시 중인 ‘다르게, 조금 더 가깝게’(김유정·박수이·이혜성 작가) 전시에는 식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조형물과 그림, 사진 작품이 전시돼 있다. 도슨트가 매일 두 번 이용객에게 작품을 안내한다. 3층에는 무명 작가들에게 대여해주는 작업 공간이 있다. 이용객은 유리창을 통해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2층에는 ‘필사의 숲’이 있다. 숲처럼 꾸며진 작은 공간에 앉아 놓여 있는 책을 원고지에 릴레이로 필사할 수 있다.
조 대표는 “도서관은 ‘기분 좋은 공간’이 될 때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돼 이용객들이 책과 더불어 공간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