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 주총 승리의 비밀무기 '스튜어드십 코드'[이창환의 PEF처럼 주식하기]

입력 2022-05-20 13:16
이 기사는 05월 20일 13:1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상장기업들의 2021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3월 말로 드디어 끝났다. 대한민국 증시 역사상 올해만큼 많은 사람이 높은 관심을 가졌던 주주총회 시즌이 또 있었을까 싶다.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 수가 최근 2년간 2배 넘게 늘어 지난해 말 기준 1380만명에 육박하고, 기존 언론매체 이외에 유튜브 등 주식시장을 다루는 미디어도 크게 늘어나면서 올해는 정말 많은 사람이 주주총회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의미있는 결과들도 있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사조오양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에 성공했다. SK케미칼은 안다자산운용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투자자들의 요구에 대응해 기존보다 크게 개선된 주주환원책을 내놓기도 했다.

필자도 운용 중인 펀드를 통해 투자하고 있는 기업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의 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통한 감사 선임에 성공했고, 경영진이 라이크기획이라고 불리는 최대주주와의 대규모 특수관계인 거래 문제에 대해서 주총을 계기로 적극 검토해 보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필자는 그 중에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라고도 불리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의 광범위한 도입을 중요 요인으로 꼽는다.

기관투자자는 고객의 자산을 수탁 받아 운용한다.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에도 고객 자산을 운용함에 있어 고객의 중장기적인 이익을 가장 최우선으로 도모할 책임(수탁자 책임)을 진다. 수탁자 책임 이행의 핵심 활동 중 하나는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인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기관투자자별로 존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나 외부의 압력 등에 따라 100% 고객 이익 관점에서 수탁자 책임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수탁자 책임이 잘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 2016년 12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 및 공표됐다. 이후 수 년에 걸쳐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의 연기금, 자산운용사, 보험사, 증권사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2018년 7월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같은 해 10월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을 주도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이 도입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의결권 행사를 통해 투자기업의 주주가치를 장기적으로 제고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모든 투자자들에 대한 동등한 대우를 추구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대체로 유사하다. 소수주주권을 약화하는 안건에 대하여 반대하고 강화하는 안건에 찬성하며, 대주주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사의 선임에 반대하고 전체 주주를 위해 일하는 이사의 선임에 찬성한다.

증시에서 국내 기관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2022년 2월말 기준 국민연금은 증시의 약 7.5%를 차지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여기에 국내 증시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기관투자자의 지분과, 본래 주주가치 관점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향이 높은 외국인(증시의 28%)을 합하면 상당 수 상장기업의 대주주 지분율인 20~40%에 맞먹는 수준에 이른다. 개인투자자들의 의결권을 뭉치기 힘든 구조적인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의결권 행사만 가이드라인대로 잘 된다면 국내 기관투자자들과 외국인들의 지분만으로 주주총회에서 대주주들의 전횡을 충분히 견제할 수준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쉽게 무력화되었던 소수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주주제안 안건들이 주주총회에서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게 되고, 반대로 대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안건들은 주주총회에서 득표율이 점점 더 떨어지게 된다.

실제 감사 선임 주주제안과 관련된 이번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주주총회의 결과를 보면, 3%룰 적용 전 기준 얼라인파트너스는 의결권 있는 주식총수의 32.0%의 지지를 받았는데(회사측은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19.4%을 제외하고는 3.5% 의결권만 일반주주들로부터 확보), 그 중 공시된 기관 의결권 행사 결과 기준으로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기관이 16.2%, 대표적인 외국계 기관인 노르웨이국부펀드가 3.5%였다(총 19.7%). 의결권 행사 공시를 하지 않은 국내 기관이나 외국인들까지 포함하면, 국내 기관과 외국계 기관의 압도적인 지지가 승리의 주요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또다른 중요한 요인은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가 스튜어드십 코드 및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감시할 고객(우리나라의 국민)들의 급격한 인식 향상이 있었던 덕분이다.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은 기관마다 존재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가이드라인'일 뿐 세부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모호한 판단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이 지점에서 여전히 고객의 이익 이외에 여러 이해관계와 영향력들이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객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기관들의 주요 의결권 행사 내역은 매년 4월 30일까지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를 통해 공개되는데, 예전보다 훨씬 많은 언론이나 국민들이 이 내역을 지켜보고 있고 이해도도 훨씬 올라갔기 때문에, 기관들도 이를 의식하게 되어 과거 대비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다른 이해관계나 압력이 작용할 여지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면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 내역도 4월 30일자로 공개됐다(아래 도표 1 참고). 이번 감사 선임 주주제안에 국내외 모든 의결권 자문사들이 공통되게 찬성을 권고했고, 대부분의 기관들이 유사한 내용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권 또는 반대를 한 기관들도 존재한다. 의결권 행사 공시에는 사유도 같이 공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해당 사유를 살펴보고 각각의 기관들이 정말로 고객의 장기적 이익 관점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고객들이 비교해서 살펴보고 추후 펀드 운용사 선택 등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기관들이 고심하면서 고객 이익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의결권을 행사했을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기업 특유의 구조적 거버넌스 이슈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주가 누르기, 그리고 일반 주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제도의 미비로 인해 기업이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서 운영되고 주주환원 없이 쌓여가는 기업들의 유보현금은 주식 시장 내의 수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주식에 대한 무관심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는 S&P 500 지수의 지표와 KOSPI 200의 지표를 비교하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보유한 순자산가치만큼의 가치를 간신히 인정받고 있는 반면, 이사들이 법적으로 주주들에 대한 수탁자 책임을 부담하고 기본적으로 모든 주주의 비례적 이익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하도록 돼있는 미국 기업들은 순자산가치의 4배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자본 활용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ROE도 글로벌 시장 지표에 비해서 현저하게 낮은 것이 현재 한국 주식 시장의 현주소다(도표 2).


(도표2: 글로벌 주식 시장의 가치평가 지표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출처:Capital IQ, 2022년 4월 8일 기준.)

그렇지만 지금처럼 스튜어드십 코드가 한국 자본시장에 제대로 정착되고, 기관투자자의 고객인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제대로 된 수탁자 책임 이행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게 된다면, 위에서 살펴본 사례에서와 같이 국내 기업들의 고질적인 거버넌스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거버넌스 이슈 해소를 위한 일반주주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더 늘어날 것이고, 예전보다 점점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수탁자 책임이 단순히 의결권 행사를 통해 표를 던지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모든 기관들은 기업이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지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견제할 건설적 관여활동의 책임이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기관투자자는 주주가치를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동주의 투자자가 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탁자 책임이 제대로 세워진다면, 이는 우리나라 자본시장 선진화의 근본적인 동력이 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확산과 함께 앞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어떻게 바뀌어 갈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이유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