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부터 참모형까지…역대 대통령 '내조의 여왕'은 누구

입력 2022-05-14 07:00
수정 2022-05-14 07:55
윤석열 대통령의 첫 출근길, 서울 서초동 사저에서 반려견과 함께 배웅하던 김건희 여사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영부인’보다 ‘대통령 배우자’란 호칭을 택한 김 여사는 당분간 조용한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등장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영부인의 법률상 표현은 ‘대통령 배우자’다. 선출된 권력도 공직자도 아니다보니 권한은 없지만 국가 지도자의 최측근으로 그에 걸맞는 품격과 공적 역할이 주어진다. 해외 순방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 동행하거나 대통령을 대신해 대외 활동도 한다. 본인 의지에 따라 의례적인 역할에 머무를 수도 있다.

역대 영부인의 역할도 제각각이었다. 시대 상황과 사회적 인식, 개인의 성향이 좌우했다. 정치와 거리를 두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은둔형’부터, 대통령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돌보는 ‘국모형’, 가까이서 쓴소리를 마다 않는 ‘참모형’, 국정을 홍보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참여형’까지. 74년간 청와대를 거쳐간 11명의 내조 스타일을 살펴봤다. ○이승만, 프란체스카 도너


초대 영부인이자 유일한 외국인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의 비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미군정으로부터 업무를 이양 받는 과정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의 유창한 영어 실력이 큰 역할을 했으며, 피난 생활 와중에 세계 각국에 구호품을 보내달라는 영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한국에 살면서는 ‘호주댁’으로 불렸는데 그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한 탓이었다. 또 근검절약이 몸에 베였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물과 전기를 아끼기 위해 손빨래를 하고 한번 쓴 비눗물은 다시 모아 걸레를 빠는데 썼다. ○윤보선, 공덕귀


공덕귀 여사는 요코하마 공립 여자신학교를 졸업한 한국 최초의 여성신학자였다. 그는 1년 8개월의 청와대 생활을 ‘귀양살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정치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조용한 청와대 생활을 끝낸 뒤 1970년대부터는 원폭 피해자 돕기 운동, 통일 문제 등에 적극 나서면서 사회운동가로 활약했다. 공 여사는 청와대에서 고부가 함께 살았던 최초의 사례로도 기록돼 있다. ○박정희, 육영수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안의 야당’을 자처하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날마다 신문과 방송을 챙겨보고 청와대로 쏟아지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는 등 민원도 손수 챙겼다. 양지회와 육영재단 등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여성·장애인·아동 등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벌였다. 영부인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도 이 당시 신설됐다. ○최규하, 홍기


8개월 여의 짧은 재임 기간 탓에 홍기 여사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홍 여사는 한학자 집안의 후손으로 정규 교육 대신 한문을 배우며 교양을 쌓았다.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영부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의례적인 일만 수행했다. ○전두환, 이순자


이순자 여사는 “보안사 위에 여사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만큼 정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남편과 나란히 손을 흔들며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하한 모습은 당시 국민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 여사는 특히 화려한 의상과 사치스런 보석으로 재임 기간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2017년 자서전에서는 “전두환의 쿠데타는 사심이 없는 쿠데타였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었다. ○노태우, 김옥숙


김옥숙 여사는 잠행 스타일을 고수했다. 취임 초기부터 언론이나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임 퍼스트레이디인 이순자 여사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의식해 다소곳한 ‘현모양처’ 이미지를 강조했다. 노태우 대통령 퇴임 후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는 아예 두문불출했다. ○김영삼, 손명순


손명순 여사는 남편을 ‘총재님’, ‘대통령 각하’로 높여 부른 것으로 유명한데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알려졌다. 반면 김 대통령은 사석에선 영부인을 친근하게 ‘맹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참모 부인들과 의례적인 모임도 없애고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등 조용한 헌신자 역할을 자처했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선물도 대부분 돌려보냈다. 튀는 색상의 옷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물론 옷의 라벨을 떼고 입을 정도로 구설수를 원천 차단했다. ○김대중, 이희호


민주화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인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 불린다. 남편의 상황과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직접 외신기자들을 만나고 해외 유력 인사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쳤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한 정책들을 제안했고, 실제 여성 장관과 청와대 여성 비서관 수가 크게 늘었다. 여성가족부도 이 때 신설됐다. 영부인 호칭이 ‘여사’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로 알려져있다. ○노무현, 권양숙


권양숙 여사는 ‘조용한 청와대’를 목표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특별한 구설에 오르지 않고 생활했다. 오히려 직설적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말 좀 그만하시라”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임기 후반부터는 권 여사 혼자 공개된 자리에서 언론인들과 만나는 등 ‘조용한 내조’의 틀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명예 대회장직,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는 등 대외 활동의 보폭도 점차 넓혀갔다. ○이명박, 김윤옥


김윤옥 여사는 한식 세계화 등 우리 문화 전도사를 자처했다.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위원장을 맡기도 한 김 여사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간에서 오찬과 만찬 메뉴를 직접 고르는 등 적극적인 ‘내조 외교’를 펼쳤다. ○문재인, 김정숙


'유쾌한 정숙씨'라는 별명답게 특유의 친화력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초기부터 주목을 끌었던 김정숙 여사는 청와대 SNS 등을 통해 국민과 소통을 하는 등 광폭행보를 보였다. 청와대 관저로 이사하기 위해 짐을 싸는 중 찾아온 민원인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동남아시아 순방 당시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춘 일화는 유명하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