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A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박모 씨는 지난해 10월 망막장애로 한쪽 눈이 실명되자 치료 후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A보험사는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치료비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며 청구를 거절했다.
보험사가 의료비 부담을 낮추려 만든 ‘본인부담상한제’를 악용해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12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본인부담상한제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3년 간 18건이 접수됐지만 지난해에만 25건이 접수됐다.
본인부담상한제란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비급여 진료비용 등을 제외한 본인부담금 총액이 본인부담상한액을 넘으면 초과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본인부담상한액은 가입자의 소득에 따라 산정하고 매년 전국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적용하여 조정한다. 현재 소득분위 10분위 본인부담상한액은 580만원, 1분위는 입원기간이 120일 이하면 81만원이다.
문제는 보험사가 본인부담상한제 표준약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체결된 계약들에 제도를 소급 적용해 보험금 지급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2020년 9월에 제정된 표준약관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이 가능한 본인부담금에 대해선 보험사가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약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체결된 계약들엔 보험사 면책 조항이 없다.
소비자들의 피해가 급증하자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약관에 명시적 규정이 없다면 본인부담상한제와 무관하게 보험금을 전액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본인부담상한제 표준약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체결된 계약을 근거로 보험금을 보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부당한 소급적용이자 제도 취지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은 본인부담상한제 적용에 대한 보험금 심사기준 개선 등 피해 예방 방안 마련을 보험사에 권고할 계획이다.
최세영 기자 seyeong2022@hankyung.com